[KJtimes=김봄내 기자]12월 결산법인들의 정기주주총회가 끝나면서 장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CEO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장수하며 건재를 과시하는 인물들이다. 재계에선 이들에 대해 부러움과 함께 그들만의 노하우를 찾기에 한창이다.
재계에서 장수 CEO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CEO를 수회에 걸쳐 연임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직업이 사장’인 이들 장수 CEO는 한결같이 경영성과를 앞세워 비정한 CEO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실제 증권시장에선 CEO에 따라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시장에서 평가받는 능력 있는 CEO라면 그가 ‘사장’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가에는 호재다. CEO의 경영능력이 일반적인 재무제표나 경영실적과 함께 중요한 주가를 형성하는 주요 항목이 된지는 오래다.
펀드매니저들도 적정 주가를 산정할 때 각종 정보를 리스트업해서 만드는 ‘블랙박스’에 해당 기업의 CEO 경영능력을 반드시 포함시킨다. 기업탐방을 할 땐 CEO와의 면담을 통해 회사의 앞날을 측정하기도 한다. 그만큼 CEO의 위상이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재계에선 이들은 제각기 다른 경영 스타일을 지녔어도 공통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탁월한 경영성과’가 그것이다. 어려운 환경이나 위기 속에서도 기업의 비전과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기업을 일으켰고 눈에 띄는 실적 향상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그러면 이들 주인공은 어떤 인물일까.
현재 국내 대기업의 전문경영인 중 10년 이상의 세월을 CEO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는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과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 이상운 효성 부회장, 최양하 한샘 사장, 황창규 KT 회장 등이 꼽힌다. 이들은 지난 1990대 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CEO직을 맡아 끊임없는 질주를 해왔다.
차석용 부회장은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취임 10년 만에 영업이익 10배, 주가는 30배로 띄운 전적(?)이 그 이유다. 1996년 피앤지 아시아 템폰 사업본부 사장으로 CEO길에 들어선 차 부회장은 이후 쌍용제지(1998년)와 해태제과의 사장(2001년)을 지냈다.
LG생활건강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스카우트되면서다. 그 뒤 코카콜라 음료와 해태음료, 더페이스샵 등 13개 업체를 성공적으로 인수하는 능력을 보였다. 화장품 '후'는 면세점 1위로 점프했고 자율퇴근제로 조직 효율성을 높였다. 이 같은 행보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임을 얻는 역할을 했다.
지난 3월 31일 공시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총 11억66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급여로 10억8300만원을, 상여로 8800만원을 각각 받은 것이다. LG생활건강 등기이사 3명의 지난해 1인당 평균 보수가 5억2800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두 배에 이르는 액수다.
이인원 부회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지난 1997년 처음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은 후 18년째 CEO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롯데쇼핑 정책본부장, 부회장을 겸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롯데와 인연을 쌓은 것은 1973년 호텔롯데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관리담당 상무이사, 상품 매입본부 전무, 영업본부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1998년 2월 50세의 나이에 롯데쇼핑 대표이사 사장자리에 올랐다.
글로벌적인 사고와 부하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부회장은 업무추진력이 탁월하고 치밀하면서도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성품은 10년 이상 롯데쇼핑을 유통업계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현재 그는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을 관장하며 그룹 경영 체질을 강화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양하 회장은 비오너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로 재계에선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9997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후 2004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임명됐고 5년 뒤인 2009년 회장으로 올라섰다.
최 회장은 영업과 생산의 주요 요직을 거친 인물로 탁월한 경영성과를 보여줬다. 한샘을 가구업계 1위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샘 입사 7년 만인 1986년 한샘의 부엌 가구 부문을 업계 1위로 올려놓고 1997년 시작한 종합 인테리어 사업을 5년 만에 1위로 만들은 것은 대표적인 실례로 꼽힌다.
이상운 부회장은 지난 1976년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효성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2년 효성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후 13년동안 전문경영인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부회장은 신입사원때부터 항상 오전 7시 반 이전에 출근할 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뚜렷한 소신파로 통하는 그는 일 처리에 빈틈이 없고 추진력이 강해 일단 일을 시작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주도면밀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의 소유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효성물산이 자금난에 빠졌을 때는 재무담당 임원을 자청해 발이 닳도록 은행을 들락거린 끝에 금융권의 지원을 이끌어내 회사를 정상화시킨 일은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 현재 그는 그룹 경영을 총괄하면서 효성의 글로벌화를 이뤄내고 있다.
이 부회장의 행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매달 전 임직원들에게 e-메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지경영’이다. 2005년부터 매월 초 직접 편지를 써 직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일부터 회사 업무 처리방식에 대한 제안, 미래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 편지는 e-메일을 통해 효성 전 임직원에게 전달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황창규 회장은 삼성 출신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메모리사업부장(사장)과 기술총괄사장을 지냈다. CEO 경력만 14년차로 삼성 재직 당시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시킨 세계적인 반도체 전문가로 유명했다.
황 회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계기는 지난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1991년 256메가 D램 개발책임을 맡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일궈낸 성과는 그를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그가 삼성전자를 떠난 것은 2009년의 일이다. 그 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초빙교수와 지식경제부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장을 지냈고 지난해 1월 KT의 사령탑을 맡았다. 취임 직후 통신사 개인정보유출이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직접 앞에 나서 사태를 가라앉혔고 KT 임원의 인사 비리가 발생했을 때는 단호한 방침을 내렸다.
이 같은 행보는 조직의 신뢰를 쌓게 만들었다. 현재 그는 이석채 전 KT 회장이 물러나며 흔들렸을 때 믿음직한 모습으로 KT를 바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CEO세계에서 롱런의 최대 관건은 실적이며 CEO는 실적으로 말한다”면서 “실적이 안받쳐주면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당장 주주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이사회가 반기를 들게 마련인 만큼 10년 이상을 CEO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