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에 이어 올해 1월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공사장 붕괴 사고 등 연이은 대형 참사로 여파로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시민 9명이 사망한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서울시가 현대산업개발의 부실시공을 인정하고 8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지난 29일 열린 현산 제4기 정기 주주총회(이하 주총)에서 건설 안전 및 품질 관리 혁신 의지가 미흡하다는 노동시민단체들의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날 주총은 연이은 대형 참사 후 처음 열려 주주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와 관련해 30일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민변 민생경제위원회·민주노총·참여연대·한국노총 등 노동시민단체는 “이미 주총 안건에 대해 부실공사를 방지하도록 회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역시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이번 현대산업개발 주총은 주주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간 발생한 대형 참사에 책임이 있는 이사의 연임에 대해 주주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현산 측에서 준비한 이사 선임안은 주총에서 그대로 의결됐다.
이에 이들 단체는 “현산 이사회는 광주 학동 참사 이후에도 사고의 경위와 책임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나 개선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사회에 요구되는 불법·부실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특히 1차 참사(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 이후 이사회가 어떤게 참사 재발을 방지할지, 어떤 노력과 조치를 취했는지, 2차 참사(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공사장 붕괴 사고) 후에 이사회 차원에서 반복되는 참사의 원인 조사와 경영진과 임원에 대한 징계 등 책임을 묻는 노력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는 주주의 요구가 있었으나, 현산은 ‘진행 중인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참사 원인 조사와 임원징계를 하지 않았다’는 답변만을 했다. 기존 이사들에 대한 선임 안건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입장만 고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인소 사외이사는 2번의 참사 당시 이사회 사외이사로 품질과 안전을 도외시하는 경영에 대해 아무런 견제와 감시역할을 하지 못해, 현산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훼손에 대한 감독의무 소홀’을 근거로 권인소 현산 사외이사의 재연임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이 역시 소용없었다”며 “현산은 권인소 사외이사가 디지털 전문가라는 주장만 반복할 뿐 제대로 된 표결조차 생략하려 했으며, 결국 표 대결을 통해 기존 이사들의 인선을 강행했다”고 개탄했다.
단체는 또 “정익희 CSO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것 외에 별도의 안전·보건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요구한 주주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며 “단기적으로 영업 이익을 올리려는 경영진의 이해와 단기이익을 위해 품질과 안전을 도외시하는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이사의 역할 사이에서는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어 “안전보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될 전문가를 사내이사로만 선임할 경우 회사 경영진, 총수의 입장과 충돌되는 안전 이슈나 소비자를 위한 품질관리에 대해 적극적 조사나 조치를 요구할 유인이 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주 발언을 통해 이러한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사측은 ‘안전 관련 부서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조직을 재구성했으므로 문제없다’는 설명에 그쳤다”며 “이로써 현산이 법률상 정해진 최소한의 것 이상으로 전사적 안전·보건 시스템을 구축할 적극적 의지는 없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들 단체는 “다만, 품질과 안전을 담당하는 이사는 사내이사가 아니라 경영 임원과 독립해 감시와 견제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여야 한다는 주주들의 반복된 지적에 대해 대표이사는 주주총회 후 처음 개최되는 이사회에서 추가적으로 안전과 품질담당 사외이사를 추가 선임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했다”며 “노동시민단체들은 현산이 이사회에서 안전과 품질담당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하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단체는 또 “이번 주총에서 현산이 기존 주주인 네덜란드 연금 투자회사 APG의 주주제안 중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이하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 신설을 수용하지 않은 점도 유감이다”며 “APG가 제안한 지속가능경영체계에 대한 전문 신설, 이사회 내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및 운영, 지속가능경영 공시 등의 정관 변경안 등을 현산이 수용한 것은 맞지만 주로 선언적인 부분에 불과해 이로써는 미흡하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수년간 ESG 가치 제고가 기업 경영 전반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특히 현산과 같이 다단계 하도급, 무리한 공사기일 단축 등으로 대형 참사를 유발한 기업이라면 그 책임을 통감해 안전과 신뢰라는 사회적 가치를 기업 경영의 목표로 삼고 적극적으로 ESG 경영을 선포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현산은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이 시기상조이며 일부 주주들에게 남용될 수 있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원진들이 환골탈태의 노력을 약속했음에도 그 진의가 의심된다”고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이들 단체는 “지금 현산이 해야 할 일은 적당히 총수 일가와 임원의 책임은 덜어주고 품질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취했다는 시늉이 아니라 성역 없는 쇄신을 통해 안전과 신뢰에 사활을 거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산 주주총회 전날(28일) 국토교통부는 관할관청인 서울시에 잇따른 건물 붕괴 참사로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현산에 대해 사실상 등록말소를 의미하는 가장 강력한 수준의 제재를 요청했다. 이미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참사와 관련해 ‘시공·감리 등 총체적 관리부실로 인해 발생한 인재’라고 결론지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