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Jtimes=정소영 기자]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기본법이 시민의 안전과 기본권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시민사회에서 거세지고 있다. 노동·교육·문화·보건의료·소비자 등 22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8일 서울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정부가 입법예고한 인공지능기본법 시행령(안) 및 관련 고시·가이드라인(안)이 “고위험 AI 이용사업자의 책임을 광범위하게 면제해 시민을 위험에 방치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 “고위험 AI 추가 규정 공백…가장 위험한 기술이 규제 바깥에 놓여”
시민사회는 우선 고위험·고영향 AI에 대한 규제의 실질적 공백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디지털정의네트워크 오병일 대표는 “법률이 시행령에 고영향 인공지능의 추가를 위임했지만, 정작 시행령(안)은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았다”며 “공공장소 얼굴인식, 직장·학교의 감정인식 등 시민의 인권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AI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경고했다.
오 대표는 특히 AI를 실제로 활용하는 병원·채용기업·금융기관·언론사·영상제작자 등이 모두 ‘이용자’로 분류돼 위험관리·설명·감독 의무를 면제받는 구조를 문제 삼으며, “업무 목적으로 AI를 활용해 개인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명백히 ‘이용사업자’ 책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행령에 규정 빠지고, 가이드라인에만 넣어…사실상 규제 비워둔 꼴”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김하나 위원장 또한 시행령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했다. 그는 “고영향 인공지능 사업자에게 가장 핵심적인 책무조차 시행령에는 언급이 없고, 강제력이 없는 고시나 가이드라인에만 적혀 있다”며 이는 “법률이 위임한 보호 장치를 사실상 비워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시행령(안)이 법률에서 위임하지 않은 ‘사실조사 면제’ 규정과 기간조차 명확하지 않은 계도기간 운영 조항을 넣은 점을 두고 “AI로 인한 인권침해나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정부가 기업 민원부터 살피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노동·교육·문화·보건·소비자 현장의 우려...“이대로 시행하면 시민 위험 커져”
각 부문 단체는 AI 도입이 이미 현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규제 부재가 현실적 피해로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김현주 지부장은 “콜센터에서 AI 도입 이후 상담사 해고, 실시간 감시 강화, 책임 소재 공백, 고객 안전 위협까지 이미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며, AI가 영향을 미치는 노동자·고객 보호 장치가 하위법령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 교육 “AI 인재 양성 명분 아래 공교육 공공성 약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 최선정 소장 겸 대변인은 정부 정책이 ‘AI 인재 양성’에 치우친 나머지 교육을 산업 수요에 종속시키고 있다며, “기술 기업 중심 정책으로는 학생·교사의 권리 보호가 불가능하다. 윤리적 통제 능력을 갖춘 비판적 AI 시민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하장호 정책위원장은 AI 산업 육성에 매몰된 정책 구조가 “문화예술인의 생존권, 노동권, 창작 기반 전반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하며, AI 기술 확산이 불러올 저작권 파괴, 콘텐츠 왜곡 문제에 대한 국가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검증되지 않은 AI가 진단·치료 과정에 도입되면서 오진·안전 위협·부당 청구 같은 실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인공지능기본법이 의료 분야를 사실상 ‘규제 공백지대’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 소비자: “AI 챗봇 전면화…‘사람에게 응답받을 권리’ 사라져”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AI 상담·챗봇 도입으로 소비자가 기본적인 서비스 접근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AI 피해 발생 시 소비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구조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정 사무총장은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가 “AI 강국”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는 상황일수록 AI가 가져올 생명·안전·기본권 침해 위험을 국가가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개 단체는 이날 기자설명회 직후 시행령·고시·가이드라인(안)에 대한 1차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향후 노동·교육·문화예술·보건의료·소비자 등 분야별 추가 의견서를 순차적으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