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은경 기자] 정부가 병원·의약품·의료폐기물 등 보건의료 분야 전반에 대한 '탈탄소 전환' 논의를 본격화했다. 최근 중동 정세 악화와 에너지 공급 불안이 현실화되자 의료체계를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핵심 인프라로 규정하고, 병원 중심의 탄소 감축과 에너지 자립 체계 구축에 시동을 건 것이다.
국무총리 소속 의료혁신위원회는 5월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제6차 회의를 열고 '기후재난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보건의료 분야 탈탄소화 실천방안 권고안'을 심의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보건의료 체계를 단순 복지·의료 영역이 아닌 '에너지 안보 산업'으로 공식 규정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위원회는 최근 2026년 2월 발생한 이란 사태와 미국-이란 군사 충돌,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카타르 LNG 공급 차질 등을 계기로 국내 의료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판단했다.
실제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9%에 달한다. 원유 수입의 70.7%, LNG 수입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다. 특히 병원은 24시간 의료장비와 공조 설비를 가동해야 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시설로 꼽힌다.
위원회는 "의료기관 탈탄소화는 단순 환경 정책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가 에너지 안보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보건의료 분야의 막대한 탄소 배출 문제도 핵심 배경으로 지목됐다. 위원회에 따르면 병원 에너지 소비뿐 아니라 의약품·의료기기 제조, 환자 이동, 급식 조달, 의료폐기물 처리 등을 포함한 보건의료 분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2~4.4%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보건의료의 역설(Paradox of Health Care)'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오히려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며 또 다른 건강 위기를 초래한다는 의미다.
위원회는 이에 따라 ▲패러다임 전환 ▲혁신적 인프라 구축 ▲포용적 회복력 강화 등 3대 전략 목표와 6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우선 정부 내 전담 조직과 기금 설치를 통해 보건의료 탄소중립 정책을 상시 추진하는 체계를 만들고, 의료기관별 탄소 배출량 산정과 2030년 감축 목표 수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친환경 병원에 세제 혜택과 부담금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병원 특화 그린 인증제도 도입도 검토한다. 신재생에너지 기반 비상전원 시스템 구축과 의료기기·소모품 재활용 확대, 전자의무기록(EMR) 기반 탄소 관리 시스템 도입도 주요 과제로 포함됐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형 병원은 사실상 작은 도시 수준의 전력을 사용한다"며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의료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분만 인프라 붕괴 막아야"…고위험 산모 대응체계도 손본다
이날 회의에서는 고위험 산모·신생아 의료체계 개편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최근 지방을 중심으로 고위험 산모를 수용할 병원이 부족해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가 차원의 대응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2019년 30만3000명에서 2024년 23만8000명으로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고령 산모 비중은 33.4%에서 35.9%로, 다태아 비중은 4.6%에서 5.6%로 증가했다. 출산 자체는 줄었지만 의료 난이도는 오히려 높아진 셈이다.
위원회는 예방 중심 대응체계 구축을 핵심 방향으로 제시했다. 임신 초기 위험도를 조기에 선별해 분만기관을 사전 지정하고, 고위험 산모는 별도 등록·관리하는 방식이다.
또 권역별 모자의료센터에 응급 병상을 상시 확보하고 국립중앙의료원 전원전담팀과 연계한 24시간 이송·상담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자의료센터 중심 인력 집중 배치와 함께 진료지원 간호사(PA)·조산사 활용 확대, 국립대병원 전공 교원 추가 배정 등이 검토되고 있다.
위원회는 이날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권고안을 마련해 오는 6월 25일 예정된 제7차 회의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정기현 의료혁신위원장은 "모자의료와 의료기관 탈탄소화 모두 국민 생명과 직결된 시급한 과제"라며 "정부가 현장 의견을 적극 반영해 조속히 정책화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