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 국가기간통신망의 말단을 지탱하는 하청 노동자의 작업 현장에서 또다시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나, 원청인 KT는 구조적인 다단계 하청 구조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KT새노조는 지난 6월 부산에서 발생한 KT넷코어 협력업체 노동자의 사망 사고를 폭로하며, 이 비극이 5년 전 포항 사고의 재판(再版)이자 구조적 대금 미지급과 안전 전가가 낳은 ‘예고된 인재’라고 규정했다. 특히 사고 발생 닷새 뒤 ‘중대재해 제로’를 자랑하며 발간된 KT의 ESG보고서를 두고 ‘안전 분식’이라는 비판을 쏟아내며, 박윤영 대표이사를 향해 무거운 책임과 즉각적인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 “원청 안전관리·재발방지 대책 미흡” 지적…위험의 외주화 문제 제기
국가기간통신망을 유지·보수하는 현장에서 노동자 5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름이 넘도록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참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15일 KT새노조에 따르면 지난 6월 25일 오전 11시 20분경, 통신전주를 적재하고 있던 KT넷코어 부산협력사 소속의 2.5톤 크레인 차량이 브레이크 오작동으로 통신 작업 공사 현장을 덮쳤다. 이 충격으로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등 총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빚어졌다.
노조측은 국가적 기간 인프라를 다루는 공공 성격의 현장에서 발생한 참사가 이토록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가려져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거센 분노를 표출했다. 특히 이번 참사는 5년 전인 2021년 7월 경북 포항에서 발생했던 하청노동자 사망 사고의 판박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당시 포항에서는 KT의 외선설비 운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417kg 무게의 광섬유케이블에 깔려 질식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상용직 노조는 중량물 처리에 단 5mm 두께의 부실한 와이어로프를 사용하는 등 원청의 안전조치 미비와 ‘위험의 외주화’를 폭로했다.
그러나 당시 KT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입장 표명을 유보했고, 이후 원청으로서 어떠한 실질적인 개선책이나 재발방지 조치를 취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남았다는 게 노조측 설명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동일한 성격의 중대산업재해가 더 큰 규모의 사상자를 내며 반복됐다. 노동계에서는 예견된 사고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KT가 제대로 된 성찰과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외주화와 구조조정을 통한 하청 단계를 심화시키는 데 몰두해 왔기 때문이다.
노조에 따르면 KT는 이 5년의 기간 동안 구조조정을 빌미로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해 하청 구조를 다층화했다. 지난해 1월 출범한 KT넷코어는 KT가 지분 100%를 출자하고 본사 인력 1483명을 전출시켜 만든 통신 인프라 전문 자회사다. KT는 이 자회사의 협력업체 선정부터 인사발령, 예산 편성 및 집행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으나, 업무 단계는 ‘KT-KT넷코어-협력업체’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다단계 하청 체계로 고착화됐다는 것.
노조는 “구조조정 이후 설계된 이 다단계 시스템은 출범 초기부터 현장의 파행을 예고했다. 분사 직후 상시적인 현장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KT는 긴급히 단기 계약직을 채용하는가 하면, 정년 퇴직자들에게까지 전화를 돌려 계약직 복귀를 제안하는 등 극심한 운영 혼란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들어서는 자회사와 협력사 간 공사대금 미지급 분쟁, 무리한 유지보수 업무 떠넘기기 등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행위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잇따라 폭로됐다”며 “현장 근로자들의 누적된 피로가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으며, 재해 발생 시 책임은 최하단인 협력사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이미 형성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더욱 심각한 것은 사고 이후 보여준 KT 경영진의 기만적인 태도다.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단 닷새 뒤인 6월 30일, KT는 ‘2026년 KT ESG보고서’를 공식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KT는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안전관리 고도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본사는 물론 그룹사와 협력사 전반에 걸쳐 2년 연속 중대재해 ‘Triple Zero(무재해)’ 성과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했다”고 비판했다.
◆ “산재 원인 '작업자 부주의' 분류·하청 사고 누락”…ESG 보고서 내용 비판
자회사의 협력사 현장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참사 직후에, 버젓이 국제 가이드라인을 충족했다는 ‘깨끗한 무재해 보고서’를 들고 대외 홍보에 나선 셈이다.
노조는 “해당 ESG보고서의 세부 내용을 분석해보면 현장 왜곡의 수준은 더욱 노골적이다. KT는 2025년 발생한 산업재해 5건에 대해 그 원인을 ‘단순 사고 80%, 작업자 부주의 20%’로 분류해 재해의 직접적인 책임 요인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했다”며 “협력사 안전을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며 제시한 실적 또한 안전모 1444개, 발열조끼 916벌 보급 및 형식적인 컨설팅 몇 건이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계 집계 방식 역시 산재 승인 건수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 가혹한 작업 환경에 노출된 다단계 하청 노동자들의 사고가 제대로 포함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현장 노동자의 고귀한 죽음을 성과 보고서의 숫자 ‘0(Zero)’ 뒤로 은폐하는 것은 안전경영이 아닌 교묘한 ‘안전 분식’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최근 박윤영 KT 사장은 네트워크 인프라 강화와 고도화를 위해 향후 8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KT새노조는 “해당 투자의 최우선 순위는 첨단 장비나 재무적 실적이 아닌, 현장에서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어야 한다”고 경고하며, 다단계 하청 구조 아래 방치된 안전 실태와 부당한 협력사 처우를 면밀히 점검할 수 있는 대책 수립을 강력히 촉구했다. 노조는 향후 진행될 사고 조사 과정과 명확한 책임 규명 단계를 끝까지 추적하고 연대해 나갈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