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장우호 기자]이인원(69) 롯데그룹 부회장이 26일 오전 검찰 소환을 앞두고 경기 양평북한강변 산책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전 7시 10분께운동 중이던 주민이 산책로에서 60대 남성이 나무에 넥타이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신고했다. 이인원 부회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해 신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친인척관련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간 부당지원 등 그룹 내 경영비리 전반에 대해 검찰 조사받을 예정이었다. 이 부회장은 총수 일가 보좌뿐만 아니라 90여 계열사의 경영을 총괄하며자금관리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전담 수사팀이 수사를 시작할 당시부터 이인원 부회장을 수사 리스트에 올려놓은 이유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소환해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매년 계열사로부터300억원대 급여ㆍ배당금을 받는 과정에 개입한 정황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었다. 또한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6000억원대 탈세 의혹, 롯데건설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도 조사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소환 조사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함에 따라 향후 수사 방향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롯
[KJtimes=장우호 기자]위성호신한카드 사장이 연임한다. 신한카드는 지난 23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위성호 사장의 연임을승인했다. 신한카드는 위성호 사장은 빅데이터 경영을 통해 금융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했으며 전략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역량을 바탕으로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해 시장 1위 사업자로서 신한카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우수한 경영성과를창출한 점이 인정됐다고 연임 배경을 밝혔다. 위 사장은 1985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2002년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크 전문지점인 강남지점 개설준비위원장을맡았고 개점 뒤 초대 센터장을 역임했다. 신한금융 경영관리팀을 담당하면서 계열사 지원과 관리 역량을 보여줬다. 신한은행과신한카드의 통합 성공에도 관여한 점을 인정받아 2007년 8월신한금융 상무로 승진한 지 1년 만인 2008년 8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3년 8월 신한카드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뒤 취임식에서부터 2200만명 고객의 빅데이터와 모바일 카드에 대한 중요성을강조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대한민국 카드업계 최초로 빅데이터 센터를 출범시켰고, 2014년 3월부터 빅데이터 센터를 통한 수익사업을 본격 추진하기시작했
[KJtimes=장우호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68년 6월 23일 서울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리움 관장의 1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부회장은 1987년 경복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거쳐 1995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행정대학원에서 1년간 공부하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경영대학원으로 옮겨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실무에 목말라 있던 이 부회장은 박사학위까지 따라는 이 회장의 권유를 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계 인맥이 넓은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경복고 출신이 많다. 경복고 동창으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있다. 김재열 사장과는 초중고교를 모두 같이 다녔고, 이해욱 부회장과는 고교 3년 내내 같은 반에서 지냈다. 사촌지간인 정용진 부회장과는 초중고교에 이어 서울대까지 함께 다녔다. 이외에도 경복고 동문으로 선배 이재현 CJ그룹 회장, 후배 조현상 효성 부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회장 등이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동문으로
[KJtimes=장우호 기자]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42년 1월 9일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의 3남5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홍라희 관장과는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있는 상태에서 1967년 4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 창업주가 타계한 뒤 12일만인 12월 1일 삼성 2대 회장에 취임했다. 이 창업주는 이미 1970년대에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삼성그룹은 괄목할 성장을 이뤄냈다. 1993년 29조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2012년 기준 380조원으로 13배 늘어났고, 세전 이익은 8000억원에서 38조원으로 47배, 직수출은 107억달러에서 1572억달러로 15배 늘어났다 D램 하나뿐이던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은 20개로 늘어났다. 반면 제왕적인 의사결정으로 삼성자동차 등이 실패했고, 편법 상속이나 비자금 조성 등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했으며 비자금 수사 등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거나 검사들에게 뇌물을 돌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2008년 4월 22일 차명계좌와 1000억원대의 세금포탈 혐의가 적발되면서 이건희는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모든 직책
[KJtimes=장우호 기자]이화경오리온그룹 부회장이 남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함께 조경민 오리온 전 사장으로부터 200억원대의민사 소송을 당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화경 부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주인 故 이양구 회장의 차녀다. 이화여대사회학과를 나와 고교 재학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담철곤 회장과 10여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남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언니 이혜경 동양매직 고문과 달리 이 부회장은 동양제과 인턴사원부터 시작해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동양그룹은 2세대로 넘어오면서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으로 분리됐다. 오리온그룹은 사위경영으로 유명하지만 이 부회장 역시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동양제과 부사장을 역임할 때부터 실질적으로 모든 내부의 결제업무를 주도해 왔기 때문에 2000년 동양제과 사장직에 선임되고 나서도 회사 내부적으로 조직상 큰 변화는 겪지 않았다. 또한 오리온이 지난해부터 초코파이의 중국 현지화 전략에 나섰을 때도 전 세계에서 균일한 품질을 고집하며 초코파이의성공적인 중국 진출에 힘을 보탰다. 이화경 부회장은 평소 “전 세계 모든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한국과똑같이 관
[KJtimes=장우호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11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언급한 이루로 특사 명단에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정ㆍ재계에 따르면 이번 광복절 특사 중 경제인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함께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거론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사면을 지시하면서 ‘경제 문제’를 언급한 만큼 대기업 총수들의 사면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담 회장이 지난 7월 22일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으로부터 200억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당하면서, 이번 피소가 가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담 회장은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과 동서지간이다. 현 전 회장이 동양그룹 창업주 故 이양구 전 회장의 장녀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의 남편이고, 담 회장은 이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과 1980년 결혼했다. 결혼과 함께 동양그룹에 입사한 이후 동양제과 구매부장, 사업담당 상무이사를 거치면서 경영에 대한 전면적인 실무를 배웠다. 1989년 이양구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동양제과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후 20
[KJtimes=장우호 기자]최승남 호반건설 부사장이 울트라건설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최 대표는 지난 7월 20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호반건설의 울트라건설 인수가 최종 확정됨에 따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에 따라 호반건설 부사장직은 내려놓게 됐다. 최 대표는 1956년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우리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우리은행 부행장과 우리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쳐 2015년부터 호반건설 부사장을 역임해 왔다. 호반건설 내에서는 금호산업, 동부건설 등 굵직한 MA 업무를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2013년 광주은행장에 도전했으나, 지역정서를 잘 아는 내부 출신 행장을 기용해야 한다는 지역 내 목소리가 커 고배를 마셨다. 기본정보 생년월일: 1956년 직업: 기업인 직함: 울트라건설 대표이사, 호반건설 부사장 학력정보 광주고등학교 졸(1975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학사(198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2008년) 경력정보 상업은행 입행(1979년) 우리아메리카은행 이사 겸 본부장(2000년) 우리은행 서소문지점장(2004년) 우리은행 본점 영업본부장(2007년) 우리은행
[KJtimes=장우호 기자]정일선현대BNG스틸 사장이 운전기사 폭언 및 구타, 근로기준법위반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 사장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4남 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회장의 맏아들이다. 현대가(家) 3세이자, 올해 46세의젊은 기업인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과는 고려대학교 89학번동기로 같이 학교를 다녔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조지 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이수했다. 정 사장은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한 정대선 현대BSC 대표의 친형이다. 배우자는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녀 은희씨다. 지난 1999년 29세의나이로 기아자동차 기획실 이사로 그룹 경영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후 2000년인천제철 상무이사를 거쳐 2001년 현대BNS스틸의 전신인삼미특수강 상무이사직에 올랐다. 2003년 현대BNG스틸영업본부 부사장을 지내고 2005년 대표이사를 맡았다. 2010년 지분 100%를출자해 현대머리티얼을 설립했다가 2014년 12월 31일부로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직에서 사임했다. 한편 지난 2006년 당시 7살에불과했던 정 사장의 차녀가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해 같은
[KJtimes=장우호 기자]지난해초부터 혈액암으로 투병해왔던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은 최근 악화된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22일 오전 별세했다. 195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고 서 전 행장은 계성고를 나와 고려대사학과를 졸업했다.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건 대학 졸업 후 1977년 서울신탁은행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이후 1983년 신한은행으로 옮긴 뒤로 2015년 지병으로 인해 행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인사, 인력개발, 영업추진 등 은행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7년신한은행 전산정보부장을 맡으면서 IT와의 인연이 맺게 됐다. 2004년 부행장으로 승진하면서 CIO역할을 맡았고, CIO 임기를 마친 후 2006년신한금융지주 부사장, 2007년 신한생명보험 사장, 2010년신한은행 은행장 등 신한금융그룹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2010년 신한은행장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IT부문의 혁신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은행장 재임시절 기존 IT그룹의 명칭을 업무개선그룹으로 바꾸는 등 IT조직을 과감하게 통폐합시켰다. 특히 기존 IT그룹에 현업부서인 프로세스 개선부와 BPR부서를 포함시켰는데, IT조직이 근본적으로 체질이 바뀐 계기
[KJtimes=장우호 기자] 박서원 두산그룹 전무가 광고업계에 반향을 일으키더니 두산 면세점 사업 선봉에 서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박 전무는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재벌가 자제답지 않은 삶을 살아 왔다. 학창시절부터 공부에 뜻이 없던 그는 정원 미달인 학과에 간신히 입학,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연이은 학사경고에 미국으로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에도 공부에 흥미를 찾지 못하자 경영학→사회학→범죄심리학→기계공학→화학 등 계속해서 전과를 하다 산업디자인에 흥미를 붙이고 적성을 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06년 동기 4명과 함께 의기투합해 ‘빅앤트’를 설립한 후 3년 연속 국제 광고제에서 입상하며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 2009년에는 이제석이 제작한 공익광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를 공동제작하기도 했다. 이 광고는 세계 5대 광고제에서 한국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후 빅앤트의 첫 브랜딩 사업으로 콘돔을 채택, ‘바른 생각’을 출시해 국내 대기업이 다루지 않던 영역에 손을 뻗었다. 연이어 나무에서 일찍 낙과하거나 상처가 나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과일로 만든 잼 ‘이런쨈병’을 출시해 화제가 됐다. 물론 지
[KJtimes=김봄내 기자]미래학자인 미국의 앨빈 토플러가 27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9일 보도했다. 향년 87세. 이 통신은 토플러가 부인과 함께 설립한 컨설팅회사 '토플러 어소시에이츠'(Toffler Associates)의 발표를 인용해 토플러 박사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이 재단은 별세 원인을 밝히지는 않았다. 토플러는 10여 권의 저서로 사회의 변화 방향을 제시한 미래학자이다. '미래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을 통해 인류 사회가 제조업 기반의 경제에서 지식과 데이터 위주의 사회로 이동해 갈 것을 예견했다. 그의 사회 변화와 관련한 생각은 전 세계 지도자와 기업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난 토플러는 뉴욕대에서 영어를 전공하다가 나중에 부인이 된 하이디를 만났다. 이들은 대학을 중단하고 1950년 클리블랜드로 이주해 알루미늄 제조 공장에 취직했다. 토플러는 용접공으로, 부인은 노조 직원으로 일했다. 토플러는 1998년 인터뷰에서 "공장에서의 경험은 공장 근로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덜 지능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고 밝혔다. 토플러는 이후 신
"MsoNormal" style="line-height: 1.4;">[KJtimes=장우호 기자]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의 저서 ‘CEO의 기도’가 6월 2주 교보문고종교부문 베스트셀러 5위에 올랐다. 청운교회 장로이자 서희건설 CEO인 이 회장은 회사를 건설업계 중견기업으로 이끌면서 직접 써 놓았던 기도문을 엮어 본 저서를 냈다. 출판은 와엠퍼블 출판사에서 맡았다. 김도연 POSTECH 총장은 “(이봉관회장은) 이웃과 국가에 대한 따뜻한 시선, 미래에 대한 담대한시야를 가진 큰 어른으로서 가르침이 많은 분들께, 신앙생활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영 계명대학교 명예교수는 “‘CEO의 기도’는 전통적인 형식을 깨고 가슴을 뜨겁게 열어낸 시(詩)이자 애가(哀歌)”라고전했다. 이봉관 회장은 “건설업계 30위의매출 1조 규모인 탄탄한 건설사가 되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간구했던 기도의 힘이 컸다”고 책을 통해 밝힌 바 있다.
[KJtimes=김봄내 기자]LG그룹 창업 1세대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 7일 새벽 3시 30분,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숙환으로 세상을 떠난 구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장남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전 LS그룹 회장), 구자엽 LS 전선사업부문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1일 오전,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이다. 그러면 구 명예회장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구 명예회장은 1923년 6월 24일 경남 진양 출생으로 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LG그룹 창업 1세대 6형제 중 넷째인 그는 LG그룹 창업 1세대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었다. 사실 구 명예회장은 정·재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서울대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자유당 시절인 1958년 정계에 입문해 제4대 민의원을 지냈다. 이후 6~10대 국회의원을 지내 6선의 경력을 쌓았으며 1970년대 중반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민주공화당 정책위 의장, 제2무임소 장관 등도 지냈다. 그런가 하면 금성사 부사장 등을 맡아 LG그룹의 기틀을 닦는 데 기여했다. 이후 럭키금성그룹 고문, LG그룹 창업고문 등을 지
[KJtimes=김봄내 기자]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 주력 관계사 CEO 5명이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 경제사절단에 동행한다. 2일 SK그룹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이란 순방 기간 최태원 회장과 유정준 글로벌성장 위원장(SK E&S 사장), 장동현 SK텔레콤[017670] 사장, 문종훈 SK 네트웍스 사장, 김준 SK에너지 사장, 송진화 SKTI 사장 등 6명의 SK그룹 경영진이 이란을 방문하고 있다. 이는 SK그룹이 참가한 역대 사절단 중에서 최대 규모다. 그동안 최 회장이나 관계사 CEO 일부가 대통령 경제사절단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최 회장을 비롯해 6명의 그룹 최고 경영진이 한꺼번에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참여한 적은 없었다. SK그룹은 "'글로벌 경제의 오아시스'로 불리며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으로 주목 받는 이란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구성해 현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SK 경영진들은 이란 현지에서 에너지 확보, 재건 참여, ICT 분야 등 다양한 사업기회 포착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은 대규모 경제사절단 참석 배경에 대해 "경제 제재로부터 막 벗어난 이란은 석유자원 확보,
[KJtimes=김봄내 기자]SK그룹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부인 노순애 여사가 28일 오후 9시39분께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SK 회장의 창업을 조용히 내조하고 대주주 일가의 화목을 일궈낸 집안의 큰 어른인 노 여사는 1928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최 창업주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1949년 4월 그녀의 나이 22세 때다. 수성 최씨 장손이었던 두 살 연상의 최 창업주를 만나 결혼한 뒤 3남 4녀의 자식을 뒀다. 장손의 아내였던 노 여사는 고 최종현 회장을 비롯해 최종관, 최종욱 고문 등 시동생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며 보살피고 결혼 등도 손수 챙겼다. 실제 최 창업주가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종갓집 살림과 자식 교육에 전담하는 등 ‘조용한 내조’에 힘써왔다. 사실 노 여사의 일생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일례로 결혼한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했다. 최 창업주는 동생 최종현 회장, 아버지 최학배 공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반면 노 여사는 맏며느리로서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와 함께 집을 지켰다. 같은 해 9월 서울이 수복됐다. 당시 집으로 돌아온 최 창업주는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처가가 있는 용인으로 향했다.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