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장우호 기자]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1932년 4월 17일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 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과 故 명계춘 전 두산산업 감사 사이 6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1년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59년 워싱턴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결혼은 여동생 박용언씨의 친구 故 이응숙씨와 했다. 이씨는 박두병 초대회장이 며느리감으로 마음에 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동양맥주에 입사해 경영에 참여한 뒤 1966년 한양식품 사장, 1973년 동양맥주 부사장에 올랐고 1974년 합동통신과 두산산업 사장에 취임했다. 1978년에는 두산산업 회장이 됐다. 1981년부터 두산그룹 회장을 맡다가 1991년 이른바 낙동강 페놀사건으로 인해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1993년 두산그룹 회장에 복직한 뒤 1996년부터 현재까지 명예회장으로 있다. 대외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4년 한국신문협회 이사, 국제언론인협회 회원을 지냈고 1981년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국제상업회의소 의장을 맡았다. 1983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1988년 현
[KJtimes=장우호 기자]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1955년 2월 5일 서울특별시에서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과 故 명계춘 전 두산산업 감사 사이 6남1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1973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그해에 강성진 BNG증권 회장의 장녀 강신애씨와 결혼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82년 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외환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3년 두산건설 뉴욕지사에서 근무했다. 두산음료에서 1990년 이사, 1994년 전무를 맡았다. 1995년 두산동아 부사장,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 부사장을 거쳐 1996년 OB맥주 부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그룹에서 부회장에 올랐다가 故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이 형제의난을 일으키자 모든 직함을 내려놨다가 2007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뒤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2009년 오리콤 회장, 두산건설 회장, 두산중공업 회장을 겸임했다. 형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에 이어 2012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해 4년간 두산그룹을 이끌었다. 201
[KJtimes=장우호 기자]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1940년 9월 11일 일제 강점 하의 경성부, 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과 故 명계춘 전 두산산업 감사의 6남1녀 가운데 삼남으로 태어났다. 1959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부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상대에 진학해 1965년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두산가(家)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MBA 학위를 취득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나온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 김영희씨와 혼례를 올렸다. 한국투자금융과 한양투자금융 등에서 금융 업무를 익힌 뒤 1974년 두산식품 전무로 그룹 일에 참여했다. 1984년 동양맥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1993년 두산그룹 부회장, 1994년 오비맥주 대표이사 회장을 지낸 뒤 2001년 한국중공업이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했다.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의 대표이사 회장이 되면서 두산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2007년 두산중공업에 복귀해 2015년 중앙대학교에서 물의를 일으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
[KJtimes=장우호 기자]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1950년 6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故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와 지송죽 남양유업 전 감사 사이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7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76년 故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녀 이운경씨와 결혼했다. 1974년 남양유업 기획실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을 틈틈이 도왔다. 1977년 이사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1979년 상무, 1980년 전무, 1988년 부사장을 지낸 뒤 1990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03년부터 남양유업 회장을 맡고 있다. 남양유업은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이 1964년 자신의 본관인 남양 홍씨에서 사명을 따 설립한 기업이다. 홍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계의 대부로 평가받는다. 故 김복용 매일유업 창업주와 비슷한 나이, 이북 출신, 짠돌이 경영 등 유사한 점이 많아 비교대상이 됐다. 두 회사가 취급하는 제품군과 매출액도 비슷했다. 홍 명예회장은 1954년 설립한 남양상사가 1962년 화폐개혁으로 순식간에 바닥에 주저앉자 극단적인 보수 경영을 실시하고 홍원식 회장의 경영수업을 일찍 시작했
[KJtimes=장우호 기자]故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은 1937년 4월 29일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과 故 명계춘 전 두산산업 감사 사이 6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뉴욕대학교에서 상학을 전공했다. 뉴욕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62년 미국에서 만난 故 최금숙씨와 혼인했다.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뒤 1965년 두산산업에 입사해 1974년 전무이사를 달았다. 같은 해에 동양맥주 전무이사에도 올랐다. 1977년 두산산업 부사장, 1993년 두산상사 회장을 거쳐 1996년 맏형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2005년 두산가 ‘형제의 난’을 계기로 두산그룹 회장직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이 됐다. 명예회장에는 올랐지만 사실상 제명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08년 성지건설을 인수하고 회장에 올랐다. 그룹을 경영하면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올랐다. 1983년 OB베어스 구단주로 있었고, 1998년 KBO 제12대 총재로 올라 제14대 총재까지 연임했다.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공격적인 경영으로 그룹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KJtimes=장우호 기자]신동원 농심그룹 부회장은 1958년 1월 9일 부산에서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김낙양 여사 사이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과는 일란성 쌍둥이다. 장남 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은 동생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보다 10분 일찍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다.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1986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나온 민선영씨와 중매로 만나 두달 반만에 결혼했다. 민씨는 민철호 전 동양창업투자 사장의 장녀다. 1976년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를 학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교 졸업 후 1979년 농심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1994년 농심 전무이사에 올랐다. 1996년 농심 부사장과 농심기획 대표이사 사장을 겸임했다. 1997년 농심 국제담당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있으며 2010년부터는 농심홀딩스 대표이사 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2011년 팔도가 꼬꼬면을 출시하자 국내에 하얀국물 열풍이 불었다. 당시 삼양은 나가사키짬뽕, 오뚜기는 기스면을 출시하며 잇따라 하얀국물 라면을 출
[KJtimes=장우호 기자]팔도가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고정완(54) 사장을 선임했다. 팔도의 새 사령탑을 맡은 고정완 팔도 대표이사 사장은 1963년 4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1년 아주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7월 한국야쿠르트에 입사해 26년간 이 회사에 근무했다. 2005년 경영지원팀장, 2008년 홍보부문장, 2009년 경영지원부문장, 2014년 최고운영책임자를 역임했다. 2015년부터 3년간 한국야쿠르트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며 커피, 디저트, 간편식 시장에 진출하는 등 종합 식품유통기업으로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다. 고정완 대표는 한국야쿠르트에서의 경영능력과 경험으로 팔도 성장에 주력할 방침이다. 한편 최재문 팔도 대표이사 부회장(56)은 한국야쿠르트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회사 발전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이번 임원인사에 따른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한다. [고정완 대표이사 사장 프로필] 생년월일1963년 4월 10일 학력사항아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1991년) 경력사항한국야쿠르트 입사(1991년)경영지원팀장(2005년)홍보부문장(2008년)경영지원부문장(2009년)최고운영책임자(2014년)한국야쿠르트 대표이
[KJtimes=장우호 기자]한국야쿠르트가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김병진(51) 부사장을 선임했다. 신임 사장에 오른 김병진 한국야쿠르트 대표는 1966년 5월 13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한남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같은해 7월 한국야쿠르트에 입사해 평생을 이 회사에 몸담았다. 회계를 시작으로 영업, 마케팅, 기획 등 폭넓은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5년 경영지원팀장, 2011년 경영기획부문장, 2012년 상무이사, 2015년 전무이사를 거쳐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부사장을 역임하며 사내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김병진 대표는 회사 내 다양한 보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야쿠르트의 지속 성장을 이끌어갈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김병진 대표이사 사장 프로필] 생년월일1966년 5월 13일 학력사항한남대학교 회계학과 졸업(1991년) 경력사항한국야쿠르트 입사(1991년)경영지원팀장(2005년)경영기획부문장(2011년)상무이사(2012년)전무이사(2015년)부사장(2017년)대표이사 사장(2018년)
[KJtimes=장우호 기자]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은 1910년 10월 6일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 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보부상 출신의 거상 故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와 故 정정숙 여사 사이 4남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딸만 낳던 집안에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 동대문심상소학교와 경성중학교를 거쳐 경성고등상업학교(해방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1년 서울 서린동에서 저포전을 경영하던 명태순씨의 딸 명계춘씨와 결혼했다. 1932년 경성고상을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1936년 부친이 운영하는 두산그룹의 전신 ‘박승직상점'에 상무이사로 입사해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근대적 경영방식인 출근부제도와 보너스제도를 도입했다. 1940년대 일본의 전시 통제로 박승직상점 경영이 어려워지자 미쓰비시 그룹이 운영하던 기린맥주 조선지부 대리점을 열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박승직상점은 문을 닫았지만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인 쇼와기린맥주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일본인이 소유했던 적산기업체였기 때문에 광복 이후 미군정청관리 기업체가 됐고 대한민국정부 수립에 따라 관리지배인으로 있었던 그가 사장에 취임하게
[KJtimes=장우호 기자]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1932년 3월 27일 울산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집안의 5남5녀 중 다섯째이자 3남으로 태어났다. 원래 1930년생이지만 호적에 2년 늦게 올라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 의용경찰로 군 복무를 마친 뒤 1957년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동아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부터 학업과 장사를 병행했다.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철지난 쌀을 싸게 판매하려다가 실패한 뒤로 식품의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하게 됐다. 1958년 일본 롯데 부사장을 맡았다. 1962년 일본 롯데 이사로 재직하면서 라면사업에 뜻을 나타냈다. 큰형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라면사업 반대에도 1965년 롯데공업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라면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달가워하지 않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 상호를 쓰지 못하게 막자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롯데에서 나와 독자노선을 걸었다. 1992년부터 농심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 1992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비상임부회장을, 199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롯데공업에서 ‘롯데라면’을 선보인 뒤 19
[KJtimes=장우호 기자]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955년 2월 14일 일본 도쿄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2남2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친모는 시게미쓰 하츠코씨이며 누나인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여동생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과는 이복형제 사이다. 일본 아오야마가쿠인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부를 거쳐 1977년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1980년 미국 콜롬비아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1985년 일본 귀족가문 출신이자 다이세이건설의 부회장으로 있는 오고 요시마사씨의 차녀 오고 미나미씨와 결혼했다. 미나미씨는 한때 일본 황실의 며느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의 중매로 알게 됐으며 주례 또한 후쿠다 전 총리가 맡았다. 1981년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에 입사해 런던지점에서 근무하다가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 한국 롯데에 발을 들였다. 1991년 일본 프로야구 구단 롯데 오리온즈의 사장 대행 지바롯데 마린즈로 변경했다. 같은 해 구단주 대행으로 취임했다. 19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
[KJtimes=장우호 기자]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1954년 1월 28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친모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둘째 부인인 시게미쓰 하츠코씨이며 둘 사이에는 신동주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있다. 1976년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 1979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의 권유로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상사에서 10년여간 직장생활을 했다. 1992년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차녀 조은주씨와 38세의 늦은 나이로 결혼했다. 신 회장이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됐다. 주례는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봤다. 1987년 롯데상사에 입사해 1990년 일본 롯데그룹과 롯데알미늄 이사에 올랐다. 같은 해 일본 롯데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3년 롯데칠성음료 해외담당 이사로 있다가 2009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 올랐다. 2011년 롯데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겸 사장으로 취임했으나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나며 2015년부터 SDJ코퍼레이션 회장, 광윤사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
[KJtimes=장우호 기자]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은 1942년 10월 16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2남2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친모는 신 총괄회장의 첫째 부인인 故 노순화씨다. 노씨는 딸인 신 이사장만을 낳고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부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를 나왔다. 1967년 대구의 재벌이었던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했으나 1979년 이혼했다. 전 남편인 장 전 회장이 경영하던 선학알미늄에 이사로 있다가 1973년 롯데호텔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1979년 롯데쇼핑으로 이동했다. 1983년 영업담당 상무, 1988년 부사장, 1989년 상품본부장, 1997년 총괄부사장, 2008년 사장까지 계속해서 롯데쇼핑에 몸담아 왔다. 2009년부터는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2012년 롯데복지재단,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이복동생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각각 일본과 한국 롯데를 물려받았다면 신 이사장은 1979년 11월 장 전 회장과 이혼한 뒤 대학 동창이자 사업 라이벌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함께 유통업
[KJtimes=장우호 기자]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1921년 11월 25일 울산광역시에서 故 신진수 씨와 故 김필순 씨 사이 5남5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명천국립종양장 연수생을 거쳐 경남도립종축장 기수보로 있으면서 1940년 이웃 마을 부농의 딸인 故 노순화 씨와 결혼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친인 신진수 씨 역시 상당한 재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부인인 노씨와의 결혼생활은 신 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1년여에 불과했다. 1941년 작가를 꿈꾸며 단돈 83엔을 들고 부관연락선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 배달 등 잡일을 하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해 1944년 졸업했다. 1944년 신 총괄회장의 성실함을 눈여겨 보던 일본인 노인 하나미쓰로부터 6만엔의 자금을 받아 커팅오일과 가마솥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공습을 맞아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1946년 도쿄에서 낡은 창고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를 세워 커팅오일을 응용해 비누와 유지류를 만들어 팔았다. 1년 반 만에 6만엔의 빚을 모두 갚고,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어 대박을 친 뒤 1
[KJtimes=장우호 기자]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1958년 10월 5일 인천에서 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故 김정일 여사 사이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미국 보스턴에서 대처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 구명진씨와 결혼했다. 장모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녀인 이숙희 여사로, 조 회장은 한진과 삼성, LG의 세 그룹을 잇는 연결고리다. 1983년 대한항공 구주지역본부 차장으로 입사해 다음해에 부장에 올랐다. 1989년 한일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증권금융업에 발을 들였다. 같은 회사에서 1991년 상무이사, 1993년 전무이사까지 승진했다. 1995년 동양화재해상보험으로 자리를 옮기고 1996년 부사장에 올랐다. 1997년 한진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1999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0년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고, 2003년 회장에 올랐다. 2007년 메리츠화재해상보험 회장을 지냈다. 2011년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가 2013년 고액 연봉 논란이 일자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 회장에서 물러났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