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장우호 기자]故 정순영 전 성우그룹 명예회장은 1922년 12월 12일 강원도 통천에서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 사이 6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영중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부터 조선제련과 보광광업에서 사원으로 일했다. 1950년 현대건설취체역(現 이사), 1951년 현대상운 부산사무소 소장을 지냈고, 1960년 현대건설 전무이사, 1969년 현대건설 부회장을 역임했다. 1970년 현대건설에서 분리된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현대그룹에서 독립했다. 성우그룹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덩치가 커진 현대건설의 시멘트 사업을 정순영 명예회장에게 떼주면서 출발했다. 당시 경제개발 호재를 안고 있었고, 현대건설이 국내와 해외시장에서 입지를 세우던 중이어서 사업 분할에 어려움은 없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현대시멘트를 물려받고 5년간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집중했다. 단양공장과 영월공장을 통해 현대시멘트를 연간 700만t 규모의 시멘트 생산 제조회사로 성장시켰다. 1975년에는 현대종합금속을 세우면서 그룹의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자동차산업 발전 추세를 따라 1987년 자동차 부품업체인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고 이어
[KJtimes=장우호 기자]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1920년 5월 6일 강원도 통천군에서 故 정봉식과 故 한성실 사이 6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현대그룹을 일군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1953년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입사해 정주영 명예회장을 도와 현대건설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한라그룹을 창업했다. 1962년 현대양행과 만도기계 설립, 1978년 한라시멘트 설립, 1981년 한라건설을 설립했으며 1984년부터는 한라그룹의 회장을 역임했다. 14세가 되던 해 무작정 상경해 야간 YMCA에서 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가며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야간 영어과를 다니다 2학년 때 중퇴하고 귀국해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길에 올라 대구에서 한 일간지 편집일을 했다. 이후 미군 사령부 통역에 지원해 공병대 장교 통역을 맡았다. 한국전쟁 동안 형 정주영 명예회장을 도와 현대건설을 키웠다. 당시 미8군이 발주한 토목공사는 현대건설이 거의 독점했는데, 미8군 공병대의 장비 상당수를 불하(拂下)받은 데다 영어에 능통한 정인영 명예회장이 큰 활약을 했다
[KJtimes=장우호 기자]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는 1977년 12월 17일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5남 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이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뒤 광고를 배우기 위해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 석사를 거쳐 외국계 광고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부친 정몽헌 전 회장이 타계한 뒤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은 모친 현정은 회장마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자, 광고인의 꿈을 접고 2004년 현대상선에 입사했다. 2011년 9월 3일 서울 장충동 소재 신라호텔에서 외국계 투자금융그룹 맥커리투자은행에 재직 중이던 신두식씨와 결혼했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결혼식에 참석해 "형님이 이 자리에 계셨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보니까 지이가 형님을 많이 닮았더라"며 정몽헌 전 회장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정 전무는 이듬해 2월 15일 첫 딸을 출산했다. 현대상선에 재직할 당시인 2005년 어머니 현정은 회장이 “남편의 유훈을 이어받겠다’며 북한에 방문할 당시 동석해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수차례 방북을 통해 故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친분을 쌓았다. 현대상선 분리
[KJtimes=장우호 기자]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은 1970년 10월 12일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4남 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과 이행자 고려산업개발 고문 사이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인 구자엽 LS전설 회장과 경복고등학교 동문이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과는 고려대학교 89학번 동기로 함께 학교를 다녔다. 1996년 8월 24일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녀이자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손녀 구은희씨와 결혼했다. 둘의 만남은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이뤄졌다. 당시 정 사장이 경영학을, 구씨가 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현대가는 비교적 소박한 혼맥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정 사장의 결혼은 대형 재벌가와 맺은 첫 인연이어서 화제가 됐다. 지난 1999년 29세의 나이로 기아자동차 기획실 이사로 그룹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00년 인천제철 상무이사를 거쳐 2001년 현대BNS스틸의 전신인 삼미특수강 상무이사직에 올랐다. 2003년 현대BNG스틸 영업본부 부사장을 지내고…
[KJtimes=장우호 기자]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은 1974년 10월 31일 서울에서 정몽근 명예회장과 우경숙 상임고문 사이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몽근 명예회장, 형 정지선 회장과 마찬가지로 경복고를 졸업했다. 1997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2003년 뉴욕 아델파이대학교 MBA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시절 현대가 3세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소탈하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12월 27일 허재철 대원강업 회장의 장녀 허승원씨와 결혼했다. 허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치과대를 나온 재원으로 알려졌다. 정몽근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 물러나자 형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권을 승계받아 형제경영을 수행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50대 그룹 오너 일가 3세 중 가장 빨리 사장과 부회장에 올랐다. 2004년 30세의 나이로 입사해 그해 임원이 됐고, 다시 4년만에 사장에 올랐다. 사장에서 부회장까지는 3년이 걸려 입사 후 부회장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8년이 채 안 된다. 50대 그룹 오너 일가 및 배우자가 입사 후 임원까지 평균적으로 약 5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초
[KJtimes=장우호 기자]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1972년 10월 20일 서울에서 정몽근 명예회장과 우경숙 상임고문 사이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몽근 명예회장, 남동생 정교선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진학해 3학년 재학 중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하버드대 스페셜스튜던트 과정을 이수했다. 2001년 故 황산덕 전 법무부 장관의 손녀 황서림씨와 연애결혼했다. 둘의 만남은 경복고 동창의 소개로 이뤄졌다. 황씨는 서울대 미대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 정몽근 명예회장이 건강을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동생 정교선 부회장과 함께 현대백화점그룹을 물려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을 중심으로, 정 부회장은 현대홈쇼핑과 현대그린푸드를 중심으로 맡고 있다. 정몽근 명예회장은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별세하면서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백화점그룹을 승계했다. 경영에 참여한 것은 1997년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하면서부터다. 2001년 기획실장 이사를 거쳐 2002년 현대백화점 기획 관리담당 부사장, 2003년 현대백화점그룹 총괄부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1970년 10월 18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故 이정화 여사 사이 1남3녀 중 장남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1989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온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1994년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에 입사했지만, 이후 1년 만에 유학길에 올랐고,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2년간 근무해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것은 1999년 현대자동차 자재담당 이사로 복귀하면서부터다. 이후 A/S, 영업, 기획 등을 거쳐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대정공에 과장으로 입사한 지 1년 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해외 생활을 잠시 하다가 이사로 현대차에 복귀한 탓에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과 비교당하기도 한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현대차 부품과장, 자재과장 등을 거치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다. ‘아버지 말씀’을 절대 거스르는 법이 없다고 한다. “현장이 중요하다”는 정 회장의 지론에 따라 주기적으로 현대·기아차의 국내외 공장을 방문하고 있다. 1995년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당시 강원산업 부회장)의 딸 정지선씨와 결혼했다.
[KJtimes=장우호 기자]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1962년 9월 1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故 이정화 여사 사이 1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85년 이화여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9월 영훈의료재단 설립자 故 선호영 박사의 아들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과 결혼했다. 선 이사장은 가톡릭의대 교수와 미국 스탠퍼드대 교환교수로 있었으며 현재는 대전 선병원에서 전문의와 이사장, 의료기기 제조업체 코렌텍에서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다. 현대가(家)의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결혼 후 경영에서 참여하지 않은 채 전업주부로 20여년간 선 이사장 내조에 매달리다가 2003년 어머니인 이정화 여사와 함께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이사를 맡으면서 경영에 처음 참여했다. 이후 2005년 광고대행사 이노션을 설립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박재범 전 이노션 대표와 제일기획 연구소장 출신의 박재항 마케팅본부장을 직접 영입하는 등 이노션 설립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국내 광고시장에서 독주하던 제일기획을 위협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1973년 설립 이래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으며 2위 기업과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 왔다. 이노션은
[KJtimes=장우호 기자]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은 1959년 3월 25일 서울에서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故 변중석 여사 사이 8남1녀 중 8남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과 마찬가지로 다른 형제들과 외모가 달라 생모가 따로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나돌았다. 중앙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해 1982년 조지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해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현대종합상사, 현대종합금융 등에서 근무하다가 1990년부터 국제종합금융을 맡아 금융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로 윗형인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정주영 창업주로부터 금융 계열사인 현대울산종합금융을 물려받아 독자 경영했으나 IMF를 이기지 못하고 동양종합금융에 합병됐다. 이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배려로 현대중공업 금융계열사인 현대기업금융과 현대기술투자의 회장직을 겸하면서 현대선물까지 3사의 경영을 총괄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조선업 위기가 심화되자 2015년 6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기업금융, 현대기술투자, 현대선물 등 금융계열 3사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개인…
[KJtimes=장우호 기자]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1955년 1월 26일 서울에서 故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여사 사이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의 금융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던 현준호씨이고 증조부인 현기봉씨 역시 주임참의를 지냈다. 아버지는 신한해운을 창업한 현영원 회장이다. 신한해운이 현대상선으로 합병되면서 현영원 회장은 현대상선 회장으로 취임했다. 외 할아버지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 어머니는 김문희 학교법인 용문학원의 이사장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외숙부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에서 인성개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영원 회장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사업 친분이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1975년 1월 울산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서 현정은 회장을 보고 당시 군복무 중이던 그의 다섯째 아들 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배우자로 낙점했다. 이듬해인 1976년 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2003년 8월 4일 남편 정 전 회장이 대북 불법송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하면서
[KJtimes=장우호 기자]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1955년 3월 18일 서울에서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故 변중석 여사 사이 8남1녀 중 7남으로 태어났다. 중앙고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를 졸업했으며 1977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한 이후 현대해상 부사장, 사장을 지냈다. 1996년부터 3년간 현대캐피탈의 전신인 현대할부금융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1981년 故 김진형 전 부국물산 회장의 장녀 김혜영씨와 연애결혼했다. 1996년 9월 분식회계혐의로 금융당국의 해임권고를 받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현대해상 고문, 2001년부터는 회장으로 활동해 왔으나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아 경영일선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후 8년 만인 2004년 말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번 경영복귀가 방카슈랑스 시행으로 인한 보험업 환경악화와 LG화재, 동부화재 등 3, 4위 업체의 거센 추격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형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사장이 이끄는 현대캐피탈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함께 손해보험중개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사업환경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재계에서 유명한 야구광
[KJtimes=장우호 기자]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1951년 11월 25일 부산에서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故 변중석 여사 사이 8남1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1964년 서울 장충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거쳤다. 이후 형제 중 유일하게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해 1975년 졸업했다. 정 이사장이 서울대학교에 1학년으로 재학중이던 1970년 2학기 교양과목 ‘문화사’ 기말고사에서 타 학우의 답안지를 베끼다가 적발돼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 때문에 그는 해당학기 전 과목 학점을 몰수당하고 6개월 정학 처분을 받았다. 1975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2년여간 군 복무와 미국 MIT 유학 등으로 자리를 비워 실질적인 경영 참여는 1980년 7월부터다. 1982년 불과 31세의 나이에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현대중공업 장으로 승진했다. 1985년 다시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1987년 11월 귀국해 현대중공업 회장을 맡았다. 1978년 미국 MIT대 유학 중 넷째 형수 이행자 여사의 소개로 김영명 예올 이사를 만나 1년여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부인 자랑이 유별나고, 가장
[KJtimes=장우호 기자]정몽익 KCC 사장은 1962년 서울에서 정상영 KCC명예회장과 조은주 여사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상영 창업주, 형 정몽진 회장과 마찬가지로 서울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KCC가는 막내 정몽열 KCC건설 사장을 제외하고 3부자(父子)가 모두 용산고 출신인다. 1980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가 미국 시라큐스대학교 경영정보시스템학과로 유학길에 올라 1985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국제재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KCC의 전신인 금강에 입사한 뒤 5년 만에 관리본부 본부장에 올랐다. 2000년부터 금강고려화학 LA사무소 소장으로 있다가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금강고려화학 부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KCC로 사명을 바꾸면서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2006년 KCC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1990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조카인 최은정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한진해운 법정관리와 물류 대란을 야기한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의 동생이다. 형인 정몽진 KCC 회장은 딜(deal), 정몽익 사장은 디테일을 담당하며 건전한 경쟁을 통해 형제경영을 수행하고 있다. 두 살 위인…
[KJtimes=장우호 기자]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1948년 9월 14일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故 변중석 여사 사이 8남1녀 중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 학사, 동 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몽헌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주영이 명예 회장이 되면서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아버지 정주영 사후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을 주관했다. 정주영 회장은 1975년 울산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현영원 현대상선(당시 신한해운) 회장을 따라 참석한 현정은 회장을 며느리로 점지해뒀다가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정몽헌 전 회장과 소개시켰다. 둘은 1976년 7월 결혼한 뒤 장녀를 낳고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 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지만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형제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었는데, 이후 2002년 9월에 5억 달러 대
[KJtimes=장우호 기자]故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1945년 2월 24일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변중석 여사 사이 4남으로 태어났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8남 근황을 소개할 때 정몽우 전 회장은 ‘건강문제로 쉬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졌던 음지의 인물이었다. 기구한 삶을 살다가 사망 후에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싸워 머리를 크게 다친 후 우울증이 발병해 자살 직전까지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82년 큰형 故 정몽필 전 현대제철 회장이 사망한 후 종업원 500여명 규모의 현대알루미늄 등 2개 회사를 맡았다. 하지만 울산에 있는 현대알루미늄 공장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을 정도로 사실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행자 고문과 연애결혼했다. 이 고문은 당시 숙명여대를 다녔는데 학교 안팎에서 유명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이 고문의 오빠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출신으로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창업주의 경호를 책임졌던 이진호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다. 정몽우 회장은 장남 정일선 현대BNG스틸 대표가 4살 되던 해부터 우울증이 심해졌지만, 당시에는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정주영 명예회장마저 “정신이 나약해 빠져서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