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장우호 기자]SK텔레콤이 2017년부터 SK텔레콤을 이끌어갈 새로운 수장으로 박정호(朴正浩) SK주식회사 C&C 대표이사 사장을 임명했다. 박정호 신임 사장은 1989년 ㈜선경 입사 이후 그룹 내 주요한 보직을 두루 거쳤으며, SK텔레콤 재임 시절 글로벌 사업 개발 및 SK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했다. 박정호 사장은 SK주식회사 C&C 대표이사로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글로벌 ICT 산업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사업구조 혁신과 글로벌 사업 실행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M&A 및 신성장 사업 개발 전문가로서 이동통신, IoT, 미디어, 플랫폼, 반도체 등 새로운 ICT 융합을 통한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를 주도할 예정이다. 또한, SK텔레콤의 Biz. Transformation을 더욱 빠르게 주도해 신규 ICT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국가 차원의 ICT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호 사장은 “SK텔레콤이 국내 ICT 기업의 대표기업으로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한편 SK텔레콤은…
[KJtimes=장우호 기자]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1942년 4월 11일 서울에서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변중석 여사의 8남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9남매 가운데 작고한 故 정몽필 전 현대제철 회장을 제외하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 ‘큰 형님’이지만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3M으로 불리는 MK(몽구), MH(몽헌), MJ(몽준) 등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 여사와 결혼했다. 부친인 정주영 창업주는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 여사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형인 정몽구 회장과 함께 경복고-한양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을 맡아 사실상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이 회사는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은 아울렛 4곳을 포함해 총 1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이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31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2015년 매출이 1조6569억원, 영업이익은 3628억원에 이른다. 1970년대 중반 압
[KJtimes=장우호 기자]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모친 김정일 여사가 15일 향년 9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한진그룹은 이날 "김 여사가 오후 9시 42분 인하대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정일 여사는 1923년 태어나 1944년 5월 한진그룹 창업주 故 조중훈 회장과 결혼했다. 슬하에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현숙씨 등 4남1녀를 뒀다. 김 여사는 헌신적인 현모양처 스타일로 조 창업주를 내조하며 1945년 11월 설립한 한진그룹이 글로벌 종합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닦는데 평생을 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창업주가 베트남 전쟁 중 현지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할 당시 김 여사가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현지에 마련된 김치 공장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는 등 전장에서 함께하기도 했다. 당시 고향과 가족을 떠나 전장에서 수송작업을 하던 직원들은 어머니처럼 헌신하는 김 여사의 모습에 위로와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김 여사는 평생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는데 '식사는 아내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신조로 고용인 없이 식사 준비 및 집안 청소를 직접 했
[KJtimes=장우호 기자]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938년 3월 19일 강원도에서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 학사학위를 땄다. 1970년 2월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장, 현대건설자료부장 및 이사, 한국도시개발 사장, 현대정공 사장, 현대자동차서비스 사장, 현대강관 사장, 현대산업개발 사장, 인천제철 사장, 현대중장비회장을 역임했다. 현대정공을 경영하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1997년 기아차를 인수해 현대차를 국내에서 독보적인 자동차그룹으로 키웠다. 1999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기본이 충실해야 결과도 좋은 만큼 부품에서 성공해야 완성차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지론을 펼쳤다. 모듈의 중요성을 인식해 현대모비스의 모듈화를 추진했다.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경영권 승계다툼, 일명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 회장은 2000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현대자동차 등 10개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평범한 실향민
[KJtimes=장우호 기자]故 정몽필 전 현대제철 회장은 1934년 1월 1일 강원도 통천에서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8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결혼 후 10년만에 첫 사업을 시작했으나, 부친과 경영방식의 갈등을 겪었다. 여기에 실적까지 부진하자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됐다. 영국에서 3년을 보내고 귀국해 1981년 8월 11일 현대그룹이 인수한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 사장에 취임했다. 취임 6개월 만인 1982년 4월 29일 새벽 경상북도 금릉군 아포면 경부고속도로에서 대한통운 소속 12톤 트레일러를 추월하려다 옆구리를 들이받은 후 엔진 화재로 운전기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정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정 전 회장의 배우자 이양자씨의 친동생이다.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19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저서 '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할 당시 정몽필 전 회장이 현대건설 해외담당 전무 직위로 본사…
[KJtimes=장우호 기자]정유경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은 1972년 10월 5일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이 1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나온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디자인에서 공부했다. 학업을 마친 뒤 1996년 웨스틴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입사해 신세계그룹에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프로젝트 실장 상무를 맡으며 실무 감각을 익혔다. 어머니 이명희 회장의 해외 출장길에 수시로 동행하며 조용히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남편은 문청 KBS보도본부장의 아들 문성욱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으로 글로벌패션1본부장을 맡고 있다. 둘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연애 결혼에 성공해 두 딸을 뒀다. 오빠인 정용진 부회장이 재혼하기 전까지 두 자녀의 엄마 역할을 도맡아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SNS를 즐겨하는 정 부회장이 2007년 고마움을 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2009년 신세계 부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어 조선호텔, 신세계 본점 식품관, 이마트 자주(JAJU, 구 자연주의) 등을 리뉴얼 했다. 특히 조선호텔 리뉴얼 당시 객실 인테리어는 물론 세세한 소품까지…
[KJtimes=장우호 기자]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1968년 9월 19일 정재은 신세계백화점 명예회장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이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다.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입학해 1년 동안 다니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브라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외사촌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경복고 동기동창이며, 서울대도 같이 다녔다. 병역은 과체중 사유로 면제받았다. 1993년 배우 고현정씨와 결혼했으나 2003년 이혼했다. 전처인 고현정과 사이에서는 아들 정해찬과 딸 정해인을 얻었다. 정 부회장이 둘의 양육권을 갖고 있으며, 현재 둘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5월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재혼한 지 2년 6개월만인 2013년 12월 1남1녀 이란성 쌍둥이를 품에 안으면서 모두 2남2녀의 자녀를 두게 됐다. 한지희씨는 2003년 회사원과 결혼했다 2006년 이혼했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한국후지쯔 유통사업부에서 1년간 일한 뒤 1995년 27세에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참여했다. 1997년 기획조정실 상무, 2000년 경
[KJtimes=장우호 기자]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1943년 9월 5일 경남 의령에서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故 박두을 여사의 3남5녀 중 막내이자 오녀로 태어났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오픈하면서 아버지인 이병철 창업주의 흉상을 본관에 세웠다. 언론 인터뷰에 나서고 사보에 아버지와의 일화를 소개하는 글을 싣는 등 외부와의 접촉을 늘리기도 했다. 제3ㆍ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 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의 차남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과 중매로 만나 1967년 결혼했다.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생활미술학을 전공했다. 2008년 3월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이명희 회장의 재산은 약 20억달러로 세계 605위를 차지했고, 2009년 기준 대한민국 여성 부호 중 가장 재산이 많다. 25세에 결혼해 12년간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가 백화점사업부를 맡아서 운영해보라고 권했다. 이 회장은 경영에 자신이 없다고 했으나, 결국 신세계를 대한민국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시키게 된다. 젊은 시절 그는 부친이 사무실에서 먹는 과일의 당도 또한 먼저…
[KJtimes=장우호 기자]이덕희 여사는 1940년 11월 28일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故 박두을 여사의 3남5녀 가운데 여섯째이자 사녀로 태어났다.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남편 故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은 마산고와 서울대학교 상대를 마치고,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 등 삼성 주력 계열사를 두루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냈다.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의 구단주를 맡기도 했다. 2000년 3월 은퇴 후 2006년 10월 사망하면서 5300여억원 삼성생명 지분 93만여주, 지분 4.68%를 삼성생명공익재단에 기부해 화제가 됐다. 생전에는 삼성전자 주식을 8만주 보유해 ‘큰 손’으로 불렸다. 이덕희 여사는 배우자 이종기 전 회장과 슬하에 이권수, 이유정 등 1남1녀를 뒀다. ====================================================================== 기본정보 생년월일: 1940년 11월 28일 ====================================================================== 가족정보 관계 이름
[KJtimes=장우호 기자]이순희 여사는 1939년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故 박두을 여사 사이 3남5녀 중 삼녀로 태어났다. 김규 제일기획 상임고문과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해 눈길을 끌었다. 이 씨는 제일기획에서 고문을 맡은 것 외에는 알려진 행적이 거의 없다. 범삼성가 유산소송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지지했다. 배우자 김규 상임고문은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명예교수로 있다. 한겨레신문 1999년 10월 14일자 보도를 통해 미국 버클리대 신학대학원에서 딴 박사학위가 허위임이 드러났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 고문의 박사논문 중 10여페이지는 캐나다 밴쿠버대 부교수의 논문 일부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의 저서 ‘방송미디어’도 시드니 헤드의 책을 출처 없이 가져다 써 학계에서 표절 비난을 받았다. 이순희 전 고문과 그의 아들 김상용 대표가 각각 지분 13%, 76.1%를 보유하고 있는 알머스는 삼성전자로부터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성장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의 친인척 회사이면서 삼성전자 및 중국현지법인과의 거래로 매출의 90%가량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매출 2790억원 중 99%인…
[KJtimes=장우호 기자]이숙희 여사는 1935년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故 박두을 여사의 3남5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이 여사가 1957년 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삼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하면서 삼성가와 LG가는 사돈관계로 발전했다. 2012년 2월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이 여사도 삼성그룹을 상대로 삼성생명 223만주를 비롯해 삼성전자 주식 등 당시 시세로 1900억원대의 상속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그는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산으로 인정된 차명주식 가운데 자신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주식을 달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당시 이 명예회장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던 법무법인 화우가 이 여사의 소송도 함께 맡았다. 상속분쟁에서 패소하면서 2015년 11월 삼성물산에 소송비용 615만원을 지급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결정을 받았다. 배우자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장남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은 1957년 태어나 심연보씨와 결혼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헬렌 커티스 본사와 체이스맨해튼은행 뉴욕 본사 및 홍콩법인, LG전자 뉴욕 미주법인, 삼성물산,…
[KJtimes=장우호 기자]故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은 1933년 5월 24일 의령에서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56년 일본 가쿠슈인 대학 화학과, 1959년 와세다 대학교 상학과, 1964년 와세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65년 귀국 후에 삼성그룹에 입사해 제일모직, 한국비료, 새한제지, 삼성물산 등에서 이사직을 역임했지만 당시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 이영자 여사와 연애결혼 했다. 장인은 나카네 쇼지오 미쯔이 물산 중역으로 알려졌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복역을 마치고 출소해 “자신의 아버지에게 비리가 있으니 경영에서 물러나게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냈지만 천륜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묵살당했다. 평소 첨단산업에 관심을 많아 1973년 미국 마그네틱미디어와 합작으로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설립했다. 1977년 새한전자를 인수한 뒤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와 통합해 새한미디어를 세웠다. 새한미디어는 국내 최초로 오디오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했으며, 1982년에는 비디오테이프 자체 개발에 성
[KJtimes=장우호 기자]장세주(63) 전 동국제강 회장은 1953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1970년대까지 동국제강을 재계 3위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故 장상태 회장이다. 장 전 회장은 중앙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거쳐 1978년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1987년 동국제강 상무, 1993년 동국제강 전무를 역임했고 1998년 부사장직에 올랐다. 1999년 동국제강 사장에 올랐다가, 부친인 故 장상태 회장이 타계하자 2001년부터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지난 1990년 마카오 카지노에서 상습도박을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돼 실형을 산 적이 있다. 이후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회사자금을 담보로 대출 받거나 개인 대출상환, 세금납부 등에 사용해 특경가법 상 배임죄로 징역 3년 및 집행유예 4년, 벌금 250만 원의 형이 확정되었으나 2007년 사면됐다. 장 전 회장은 2014년 급여 14억2500원을 받으면서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18억7600만원)과 조수익 삼현철강 사장(14억6700만원)에 이어 철강업계 현역 임원 중 3위를 차지했다.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지난해에는 6월 퇴임하면서 급여와 퇴직금으로 34억5900만원을 받았다. 한편
[KJtimes=장우호 기자]대법원이 일제에서 후작 작위를 받은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9일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이 낸 친일반민족행위자지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해승은 1910년 10월 일제로부터 받은 후작 작위를 광복될 때까지 유지했다. 또 1911년 1월 한일합병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16만8000원의 은사공채를 받았다. 1912년에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이어 1937년 조선총독부 전시통제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평의원을 지냈다. 이 조직이 확대개편된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도 평의원을 맡았다. 이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7년 11월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로 선정하고, 2009년 5월 이해승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다. 1심 재판부는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 것은 정당하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20세 남짓인 이해승이 한일합병에 기여했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한일합병의 공으로 후작 작위를 받았다고 보기 어
[KJtimes=장우호 기자]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1955년 11월 30일 조운해 전 삼성강북병원 이사장과 이인희 한솔 고문의 3남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배우자는 안영주씨로, 한솔그룹 형제 중 가장 알려진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안씨는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의 셋째 딸이다. 안씨의 큰 언니인 안인숙씨도 한솔그룹 주력계열사인 한솔제지 전문경영인 선우영석 부회장의 부인이어서 조 회장과 선우 부회장은 동서지간이다. 미국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테니스를 배운 것도 이때다. 이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삼성물산과 JP모건을 거쳐 1987년 전주제지에 입사해 이사대우로 일했다. 1991년부터 한솔제지 기획조정실담당 이사, 상무이사, 부사장을 역임했고, 입사한 지 10년 만인 1997년 부회장을 맡았다. 1999년 세계 최대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캐나다의 아비티비, 북유럽 최대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노르웨이의 노르스케와 합작으로 싱가포르에 아시아 최대 신문용지 전문회사를 설립했다. 외환위기 직후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합작법인을 주도해 모친인 이 고문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 NHK방송은 한국기업의 모범적인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