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지아 기자] 국제투자분쟁(ISDS) 역사상 드문 결과가 나왔다. 11월 18일(현지시간)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가 론스타 사건 원 판정을 전면 취소하며,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이 모두 소급 소멸됐다. 지난 2012년 론스타가 46.8억 달러(약 6조9,000억원)를 요구하며 시작된 분쟁은 13년 만에 한국의 '완승'으로 귀결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해 "단순한 비용 절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며 "ISDS 취소절차에서 한국 정부가 승리한 첫 사례이자, 적법절차(due process) 원칙을 둘러싼 국제 분쟁에서 중요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적법절차 위반이 가른 승부… ICC 판정문이 '판정 취소' 핵심 증거
ICSID 취소위원회가 문제 삼은 것은 원 중재판정이 한국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별건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했다는 점이었다. 해당 판정문은 하나금융과 론스타 사이의 국제중재 결과로, 금융위원회의 매각 승인 지연이 '자의적 권한행사'였다는 해석의 근거로 사용됐다.
한국 정부는 이 과정이 근본적인 절차규칙 위반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정부가 검증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자료가 중재판정부의 판단 근거가 되었고, 이는 국제법상 적법절차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논리였다. 취소위원회는 바로 이 지점을 인정했다.
위원회는 "적법절차에 위배된 증거를 기초로 국가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원 판정의 핵심 구조인 '금융위 지연→가격 인하→정부 책임'을 통째로 무너뜨렸다.
이 결정으로 2022년 판정에서 인정됐던 배상금 2억1650만 달러(원금 기준 약 3200억원) 및 이자가 모두 효력을 잃었다. 합계 약 4000억원 규모의 부담이 사라진 셈이다.
또한 취소위원회는 론스타 측의 취소신청은 전부 기각하고, 정부가 지출한 취소절차 소송비용 약 73억원을 론스타가 30일 안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13년간 이어진 정부의 대응… ISDS 취소절차 첫 승리의 의미
론스타 사건은 한국이 상대했던 ISDS 중 최대 규모였다. 2012년 사건이 개시된 이후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의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중심으로 대응했다. 태평양·피터앤김·Arnold & Porter 등 국내외 로펌과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수만 쪽에 달하는 기록을 분석하며 장기전으로 싸웠다.
2023년 론스타가 먼저 판정 일부 취소를 신청하자, 정부는 이어 원 판정의 정부 패소 부분에 대해 반대 취소신청을 제기해 맞불을 놨다. 이번 취소위원회의 결정은 한국 정부의 법리 구조가 결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사건은 ISDS 제도 전반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국가가 참여하지 않은 외부 중재판정문을 증거로 삼아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국제법상 허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것이다. 향후 다른 국가와의 투자분쟁에서도 한국이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선례가 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판정문 공개 등 절차적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보공개 의무 대상은 아니지만, 사건 규모와 국민 관심을 고려해 가능한 범위 내 공개를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13년에 걸친 장기 분쟁의 종지부가 찍혔다. 장기간의 국력 소모를 우려하던 사건은 결국 국제중재 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전략적 대응력과 법리적 완성도를 확인시키는 사례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