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지아 기자] HL그룹을 이끄는 정몽원 회장(68)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현장조사로 경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정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인영 명예회장의 아들로, 1997년부터 한라그룹(현 HL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 특히 아이스하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외활동에서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HL그룹 내부 거래 관련 '부당지원' 의혹은 정 회장의 리더십과 HL그룹의 지배구조 투명성 여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HL그룹, 지배구조 투명성 여부 재조명
지난 12월 8일 공정위는 HL그룹을 비롯해 HL홀딩스, HL위코, HL D&I 등 계열사와 정몽원 회장 두 딸이 100% 소유한 사모펀드(PEF) 로터스프라이빗에쿼티(이하 로터스PE)에 대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이는 재계안팎에서 ‘HL그룹 내부 자금이 총수 자녀 소유 사모펀드로 흘러갔다’는 부당지원 의혹이 불거진 지 약 1년 만에 진행된 사정기관의 첫 조사다.
조사 핵심은 HL홀딩스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비상장 자회사인 HL위코와 HL D&I를 경유해 로터스PE가 참여한 펀드에 약 2170억원을 출자했다는 점. 로터스PE는 정 회장의 장녀 정지연 씨가 50%, 차녀 정지수 씨가 50%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이는 HL홀딩스의 2023년 연결기준 영업이익(922억원)의 2.4배에 달하는 규모로 '로터스PE가 사실상 총수 자녀 승계를 위한 자금 조달 통로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지목되는 부분이다.
로터스PE(로터스프라이빗에쿼티, Lotus Private Equity)는 2020년 11월 30일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한국계 사모투자회사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위치하며, 신탁업 및 집합투자업을 주력으로 하는 금융 및 기업 투자 분야의 사모투자조합 운용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23년 평균 연봉이 1억원을 상회하는 등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금융투자 업계 일각에서는 로터스PE의 정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오너자녀 전용펀드’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회사의 2023년 말 기준 임직원은 이상민 대표를 포함해 단 3명에 불과하다. 공시에 따르면, 로터스PE는 단독으로 펀드를 결성한 적이 없어 출자금액 전액이 HL그룹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말 기준 5개 펀드를 운용 중이며, 이 중 58%를 HL홀딩스가 출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생 소규모 운용사에 대한 이례적인 대규모 지원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HL홀딩스가 비상장 자회사를 경유해 출자를 진행함으로써 공시 의무를 회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HL위코는 2023년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HL홀딩스의 유상증자나 차입을 통해 로터스PE 펀드에 출자금을 댄 것으로 드러나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부당지원(?) 승계지원 위한 편법?
HL그룹은 공정위 조사뿐만 아니라, 주주들로부터 직접적인 압박에도 직면해 있다. HL홀딩스의 전현직 이사들은 주주대표소송을 당했으며, 이 소송 역시 정몽원 회장이 자회사 자금 약 1830억원을 동원해 두 딸 소유의 사모펀드를 지원했다는 의혹과 직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들의 경영 불신과 배신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HL홀딩스 종목토론방에서는 "정 회장 지분이 30%도 안 되니 경영권 빼앗길까 봐 이런 비상식적인 결정을 한 것이냐"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넘어, 정 회장의 경영 결정에 대한 주주들의 직접적인 반발로 이어지고 있어 그룹의 이미지와 장기적인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HL그룹은 공정위의 법적 조사와 주주들의 불만 및 소송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현장조사 착수로 HL그룹의 우회출자 구조가 과연 부당지원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총수 일가의 승계 지원을 위한 편법인지 여부가 본격적으로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최근 내부거래 및 부당지원 규제 강화를 핵심 과제로 삼고 대기업 집단의 사익 편취 구조 점검과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어, 이번 조사는 HL그룹 지배구조 투명성 논란을 재점화시키고 정몽원 회장의 경영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정몽원 회장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그룹 회장직을 맡아 위기를 극복해 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강한 추진력과 함께 다소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보여왔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번 '부당지원' 의혹은 단순한 재무적 문제를 넘어 정 회장의 경영 철학과 HL그룹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재계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그룹의 안정적 경영 승계와 지배구조 확립 과정에서 과거에도 유사한 문제에 직면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번 공정위 조사 역시 더욱 심도 있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 회장은 과거에도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1997년 11월 24일, 정 회장은 한라그룹 계열사 자금 약 2조 1000억원을 당시 한라중공업에 불법 지원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과거 그룹의 안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있었으나 결국 '부당 지원'이라는 혐의를 벗지 못했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CEO 신상필벌'의 원칙 아래, 번 공정위 조사를 통해 정몽원 회장의 리더십이 어떠한 평가를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HL그룹은 이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법령상 불가피한 출자 방식이었다"고 설명, "추가 출자 계획이 없으며 승계와도 무관하다"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힌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