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지아 기자]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전력망 체계의 대전환이 본격화된다. 정부가 2026년을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 구축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올해 약 3,210억원의 국비를 투입해 배전망 유연화와 시장제도 개편에 나선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 에메랄드홀에서 '분산형 전력망 포럼'을 개최하고,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 구축 로드맵과 협력 방안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관련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협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업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업무협약(MOU) 2건을 체결했다.

정부가 제시한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은 태양광 등 분산형 발전원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지역 단위 전력 자립을 지향하는 '지산지소형' 지능형 계통 시스템이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대형 발전기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송전 위주 체계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 확산에 맞춘 배전망 중심 운영체계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배전망 유연화·시장 개편 '투트랙' 추진
정부는 우선 배전망 혁신을 통해 재생에너지 수용 한계를 단계적으로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배전망 포화로 접속 대기가 심각한 지역을 중심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대폭 보급한다. 2026년 20기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총 85기를 구축하며, 사업이 완료되면 약 485MW 규모의 태양광 추가 접속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산도 구체화됐다. 배전망 ESS 구축에는 2026년 국비 1,176억원(국비 50%)이, '햇빛소득 마을' 소규모 ESS 구축에는 984억원(국비 50%)이 각각 투입된다. 농공단지와 대학가 등 중소형 부하 지역을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그리드 구축에는 702억4,000만 원(국비 70~100%)이 배정됐다.
접속 제도 역시 손질된다. 정격용량 중심의 경직적 관리에서 벗어나 출력제어 조건부 재생에너지 접속 허용용량을 배전선로당 16MW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배전망 운영체계도 고도화된다. 한국전력공사는 기존 설치·유지보수 중심 역할에서 배전 운영자(DSO)로 기능을 확대하고, 차세대 배전망 운영시스템(ADMS)을 활용해 태양광 발전량을 사전 예측하고 과부하 발생 시 ESS 충전을 지시하는 동적 제어에 나설 계획이다.
전력망 투자 패러다임도 전환된다. 정부는 '전력망 비증설대안(NWAs)' 제도를 도입해 송·배전망 증설 대신 ESS 등 유연성 자원으로 계통 안정성을 확보할 경우, 망 공사비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기로 했다. NWAs는 올해 상반기 제주에서 시범 운영되며, 하반기까지 육지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시장제도 개편도 병행된다. 제주를 중심으로 전력수요 입찰제도를 도입해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난방(P2H), 전기차 충전(V2G) 등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 최소출력 보장 발전원을 제외한 발전원에 대한 가격입찰 확대도 추진되며, 제주에서 시행 중인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는 연내 육지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 같은 정책은 최근 언론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걸림돌이 계통 포화"라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업계에서는 "발전 설비는 늘어나는데 송·배전망 투자와 운영 혁신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져 왔다. 정부가 배전망 중심 개편과 시장 유연성 확보를 동시에 추진하는 배경이다.
글로벌 시장 선점 전략도 담겼다. 미국·영국·EU 등 주요국이 전력망 개편에 나서면서 세계 그리드 투자액은 2020년 2,350억 달러에서 2030년 3,720억 달러, 2050년 6,360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BNEF). 이에 정부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광주과학기술원, 서울대학교, 전남대학교 등과 협력해 'K-GRID 인재·창업 밸리'를 조성하고, 2026년 195억원(국비 100%)을 투입한다.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 연구개발(R&D)에는 34억원(국비 100%)이 배정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전력공사, 전력거래소 간 전력망 정보 교류 및 ESS 운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이 체결됐다. 아울러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서울대, 전남대, 한국에너지공대, 광주과기원 간 인재 양성 협약도 맺어졌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탄소중립은 우리가 지구와 미래세대를 위해 남길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라며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의 핵심 인프라로 속도감 있는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사업이 세계의 모범이 되도록 정부와 업계, 학계가 힘을 합치겠다"고 강조했다.
배전망 ESS 및 마이크로그리드 구축 사업자는 1분기 공고를 거쳐 2분기 중 선정될 예정이다. 정부의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분산형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수용 확대를 넘어 국내 전력산업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