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목재칩·목재펠릿·팜유 등 산림벌채 고위험 상품의 공급망에 만연한 환경·인권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에서는 제도를 정비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제도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익법센터 어필·사단법인 기후솔루션·환경운동연합 등 환경시민단체가 발표한 ‘대한민국, 산림벌채를 수입하다’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 합법목재 교역제도가 도입됐지만, 규제 대상이 목재로 한정돼 있고 원산국의 적법성 판단에 오롯이 의존할 수밖에 없어 신뢰도가 낮다는 문제가 있다.
보고서는 “오히려 정부는 기업이 해외에서 농업과 산림 자원을 개발할 때 산림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할 때도 지원해 산림벌채 고위험 상품 공급망 내 리스크를 높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며 “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인 공급망 실사 법안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특히 역외에서 발생한 환경·인권 침해의 피해자들이 사법적, 비사법적 구제책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해외에서는 불법 벌채 목재의 수입금지 조치와 자발적인 선언, 인증 제도를 통해 공급망에서의 산림벌채 문제에 대응을 해왔다. 그러나 원산국 합법 인증에 대한 낮은 신뢰도, 산업계 주도의 선언과 인증제의 한계 탓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법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미국 등에서 새롭게 마련되고 있는 법안은 목재 외의 농산물까지 산림벌채 고위험 상품으로 규제하도록 그 범위를 폭넓게 확장하고, 단순 문서 제출이나 인증제도로 실사를 대체하지 않고,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검토·조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EU 법안은 원산국에서의 적법성 여부만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원산국에서 ‘합법적’인 행위라도 산림벌채를 야기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실사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법안은 불법 산림벌채 문제에 더해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의 자유의사에 의한 사전인지동의(FPIC) 등까지 폭넓게 인권을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유럽을 중심으로 산림벌채 고위험 상품에 대한 공급망 실사 의무 외에도 기업의 활동 전반에 있어서 공급망 의무 실사를 요구하는 법이 제정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특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공급망 전체에 대해 환경 인권 실사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이 채택됐다. EU는 특정 규모 이상의 기업의 가치 사슬 전반에서의 환경·인권에 대한 잠재적, 실제적 부정적 영향에 대한 실사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보고서는 “그러나 한국에서는 현재 범지구적인 ‘산림벌채’를 막기 위해 시행 중인 제도로 합법목재 교역제도가 있으나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사회적으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열풍이 불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기업이 ESG 등 비재무적인 사항을 고려해서 사업을 하도록 규제하는 법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 “정부, 농식품산업 해외산림자원개발 환경·인권 고려해야”
한국은 목재와 목재 제품을 거래하는 국가들에서 불법 벌채된 목재 및 이러한 목재를 사용한 목재 제품의 교역을 금지하게 되자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를 도입,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목재와 목재 제품을 수입할 때 목재가 생산국의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생산됐으므로 입증하는 서류를 통관 과정에서 제출해야 한다. 제출된 서류는 한국임업진흥원에서 검증해 적합하다고 판단될 때만 수입 신고 확인증이 발급돼 세관 통관이 진행된다.
보고서는 “그러나 합법목재 교역제도는 앞서 해외 제도가 가진 한계를 그대로 갖고 있는데 원산국에서 벌채 기준이 일반적으로 산림벌채로 여기고 있는 활동도 합법적인 벌채로 인정하는 경우나 정부의 행정력의 부족으로 불법 벌채 규제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실제로 합법 벌채 목재가 아님에도 합법 벌채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며 “또 원산국의 서류 발급 과정에서 문서 위조가 발생해도 식별해낼 방법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범지구적인 산림벌채가 다양한 농산물의 생산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합법목재 교역제도는 오직 목재만을 규제하고 있으며 산림벌채와 밀접하게 연관된 다양한 환경과 인권 리스크가 아닌 단순히 ‘불법 벌채’만을 규제하고 있어 산림벌채에 대응하기에 충분한 제도라 보기 어렵다”며 “단순한 현 제도는 적법성 판단을 위해 문서 제출만을 요구하고 있는데 해외 입법사례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실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해외농업·산림자원 개발 협력법’의 문제도 지적됐다.
보고서는 “정부는 ‘해외농업·산림자원 개발협력법’에 따라 농식품산업 해외 진출 사업과 해외 산림자원 개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는 해외 진출 인력양성, 투자환경조사 등을 위한 보조금과 해외 진출기업에 대한 융자 제공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농식품부에서는 2020년까지 14개국에 진출한 41개 기업에 총 1845억원을 융자로 제공했고, 산림청에서는 2020년까지 18개국에 진출한 33개 기업에 총 2169억원을 융자 지원했다”고 전했다.
또 “이 가운데 바이오에너지 원료 확보를 명목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팜유 농장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은 산림벌채와 인권침해를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며 “특히 포스코 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 파푸아 주에서 사업을 하며 2012년부터 2017년까지 2만6500 ha에 달하는 산림을 파괴하고 토착민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인도네시아 자회사에 약 430억원을 지원했다”고 했다.
아울러 “대상 주식회사는 서부 칼리만탄섬에서 팜유 농장을 운영하며 이탄지를 훼손하고 토지 분쟁을 일으켰으나 정부는 대상 주식회사의 인도네시아 자회사에 약 69억원을 지원했다”며 “한국 정부는 농식품산업 해외진출 사업과 해외산림자원개발 사업을 지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환경과 인권 리스크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산림벌채, 이탄지 훼손으로 환경 훼손과 지역 주민들의 인권 침해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국제인증을 획득한 기업들에서도 여전히 산림벌채와 인권침해가 만연하기 때문에 국제인증 획득을 통한 환경과 인권 리스크에 대응은 한계가 분명하다”면서 “팜유 사업 외에도 다양한 사업에서 환경과 인권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어 환경 및 인권 실사를 위해서는 단순히 특정 사업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사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