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1910~1987년)은 천부적인 투시력과 재능을 가진 ‘천상 사업가’였다. 특히 이 창업주는 정보수집과 분석의 대가로 유명하다.
이 창업주의 정보수집 능력은 1938년 삼성상회를 열 때부터 빛을 발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완벽한 정보 수집을 우선 과제로 삼았던 이 회장은 삼성상회를 열기로 결정한 뒤 업종선택을 위해 국내외를 돌며 정보수집을 했다.
이에 걸린 시간만 2개월. 당시 이 창업주는 국내는 물론 중국 베이징, 상하이를 여행하면서 업종선택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모았다. 고심한 끝에 이 창업주는 삼성상회를 건어물과 청과물을 취급하는 무역업으로 결정했고, 이것이 지금의 삼성을 있게 만든 시발점이 됐다.
삼성그룹의 제2 도약을 가능하게 한 반도체사업 역시 도쿄와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정보센터에서 구상된 결과물이었다.
이 창업주의 일화로 유명한 ‘도쿄구상’ 역시 정보수집을 제 1순위로 두는 경영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1959년 세모(歲暮) 차관협상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방문한 뒤 귀국길에 오른 이 창업주는 폭설로 인해 일본 도쿄에서 발이 묶였다. 할 수 없이 도쿄의 한 호텔에서 묵기로 한 이 창업주는 일본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신춘 프로그램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당시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국제정세, 세계경제 전반 등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 내용은 앞을 보고 사업을 구상하는 이 창업주에게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값진 정보였던 것.
이에 이 창업주는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도쿄에서 체류하며 사업의 앞날을 구상했고 이것이 훗날 ‘도쿄구상’으로 불리게 됐다. 이 창업주는 이 도쿄구상을 작고하는 해까지 실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창업주의 또 다른 경영철학은 의심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이다. 삼성상회를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삼성그룹을 이끌고 나갈 때까지 단 한번도 변치 않았던 이 원칙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삼성상회를 열고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른 1년 후부터 이 창업주는 지배인인 이순근씨에게 인감과 수표책을 맡겼다. 부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후 이 창업주는 삼성그룹을 이끌어 나가면서 단 한 번도 경영인들의 중요업무인 결재라는 것을 해 본 일이 없었다.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제일주의’를 엿볼 수 있는 일화도 있다. 침을 뱉을 때 꼭 화장지 반장을 사용할 만큼 절약정신을 가졌던 이 창업주였지만 승용차, 골동품, 골프채 등은 최고의 것만을 고집하는 제일주의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KJtimes=김봄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