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라틴어의 Communicare의 ‘나누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 입장만 강조하며 상대와 소통이 안 된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커뮤니케이션은 자기 견해를 말하고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도 고려하여 쌍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도 발표하거나 강의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오히려 독선가, 이기적인 사람, 대화가 안통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온라인 교육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강의 방송을 찍는 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를 오랫동안 직업으로 해왔던 사람에게도 참 어려운 일이다. 카메라를 보며 보이지 않는 대상과 소통을 이 루기란 쉽지 않다.
필자도 예전에 2시간짜리 교육 방송을 찍었는데, 2시간 교육을 4시간 동안 찍고 한 과목은 다시 처음부터 다 시 찍어야 했다. 청중이 없는 상황에서 강의하다 보니 시선 처리 가 불안정하고 어색해서 말이 막히는 문제가 있었고, 반응 없이 혼자 떠들다 보니 강의할 때보다 말이 빨라져 전달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강의는 교육생들의 눈빛이나 끄덕임, 질문과 답변 등을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여러 번 해온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청중 없이 카메라 앞에 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소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경험을 한 후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사회자가 다른 어떤 프로그램의 사회자보다 능력자로 보였다. 혼자 카메라 너머 대중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송만 해온 사람은 청중 없이 혼자 카메라 앞에서 말하기가 더 쉽다고 한다. 이들은 안 보이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엇이 쉽고 어렵다는 자신한테 어떤 방식의 말하기가 더 적응이 잘되어 편해졌는가의 차이이다. 사람들 앞에서 강의나 발표하는 것도 처음엔 어려웠을 테고, 보이지 않는 대중을 두고 카메라 앞에 서서 혼자 떠드는 것 역시 처음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경험해본 것은 크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자신감은 그 방식에 얼마나 익숙한가에 달렸다.
“우리 아이(이땐 남편, 아내, 동료 등 대상은 달라질 수 있다)와 대화 가 안 통해요”, “상대가 내 말을 잘 이해 못 해요”, “그 사람은 벽창호예요”라며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들 중엔 자신이 상대의 입장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상대도 같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상대의 생각,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무조건 이끌어가려 하면 소통이 단절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신의 의도를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원한다면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말하지 말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의도하는 바를 이루는 좋은 방법이다.
대화는 말하는 것이 주가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기분 좋은 소통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화는 화자의 입장이 아닌 청자(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소통의 단절과 원활함을 나누게 된다. 특히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면 더욱 중요한 사항이란 것을 잊지 말자.
도서출판 ‘비전코리아’가 출간한
<착한 말, 착한 대화>
내용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