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8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선친인 고 이원만 선대회장이 1935년 일본 오사카에서 모자 사업을 시작할 때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수료하고 고국으로 건너온 후 1957년 대구에 코오롱그룹의 모태인 한국나일론을 설립했다.
국내 첫 나일론 공장을 운영해 한국전쟁 이후 폭발적인 수요에 힘입어 대한민국 화학섬유산업 시대를 개척했다. 특히 ‘섬유 종가’ 코오롱그룹을 기반을 확고히 했고 수출전선에서도 일익을 담당했다.
60~70년대 코오롱상사, 코오롱나일론, 코오롱폴리에스터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그룹의 외형을 키웠고, 1977년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화학·건설·제약·전자·정보통신 등 여러 계열사를 운영했다.
1996년 장남인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때까지 20년 가까이 코오롱그룹을 이끌고 국내 섬유산업을 주도했다.
1982~1995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내며 협회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는 사이인 1989년 경제단체협의회 회장을 맡아 동 단체를 이끌었다.
1970년 여자실업농구연맹 회장을 시작으로 1980∼1990년대 대한농구협회장, 대한골프협회장, 2002한일월드컵 조직위 초대위원장 등을 지내며 한국 체육계 발전에도 큰 힘을 보탰다.
금탑산업훈장(1982년, 2004년), 체육훈장 백마장(198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992년, 2004년), 체육훈장 청룡장(1992년, 2004년)을 받았다.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1992년) 등의 자서전을 비롯해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1982년)의 경영어록집도 남겼다. 1992년 직접 그린 그림으로 고희전, 2001년 팔순전 등 개인전을 여는 등 미술에도 관심을 보였다.
평소 등산을 즐겼던 이 명예회장은 마라톤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코오롱 마라톤팀을 운영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와 황영조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도 그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