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배 구조를 개혁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재계 안팎의 관심은 롯데가 직면한 당면과제로 모아지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불투명한 지배구조 해소, ‘반(反) 롯데’ 정서 진화 등이 그것이다.
우선 직면한 당면과제로는 롯데 대주주 일가가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꼽을 수 있다. 현재 경영권 분쟁 속에 또 한 가지 논란이 된 것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0.05%의 지분으로 재계서열 5위 그룹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한 416개의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다.
일단 총 416개에 달하는 롯데그룹의 순환출자고리는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3개 핵심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6개사 지분만 해소하면 대부분 끊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2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 집단 중 순환출자고리를 가진 8개 그룹, 448개 고리의 전체 해소 비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경우 최소 2조5000억원 정도 소요된다. 해소 비용은 대주주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최소 비용으로 산출했다.
롯데그룹은 순환출자고리를 구성하는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핵심 계열사 3곳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후지필름, 롯데제과, 롯데정보통신, 롯데칠성음료, 롯데건설, 대홍기획 등 6개 계열사의 지분을 해소하면 대부분의 순환출자고리가 끊어진다. 이들 6개사가 보유한 핵심 계열사의 지분 가치는 총 2조4599억원으로 집계됐다.
계열사별로는 한국후지필름 등 5개사가 보유한 롯데쇼핑 지분가치가 1조8325억원으로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롯데칠성음료 지분가치는 4999억원, 롯데제과 지분가치는 1235억원이다. 롯데칠성음료는 롯데제과가, 롯데제과는 대홍기획과 롯데건설이 지분을 갖고 있다.
예컨대 대홍기획이 보유한 롯데제과 지분을 대주주 일가나 자사주 형태 등으로 매입하면 ‘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롯데푸드→대홍기획→롯데제과’로 연결되는 순환출자고리를 포함한 총 172개의 고리가 끊어지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롯데그룹이 순환출자 해소에 필요한 자금을 동원하는데 무리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이와 관련 전날 “이는 그룹 순수익의 2∼3년치에 해당하는 규모로 연구 개발과 신규 채용 등 그룹의 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되지만…”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은 자금부담을 들면서 정부에 ‘유예’를 청원하는 듯한 태도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그 다음으로 꼽히는 당면과제로는 눈총을 받고 있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해소가 꼽히고 있다. 현재 롯데그룹의 경우 기업공개를 통해 증시에 상장한 계열사 비율이 9.9%로 10대 그룹 중에서 ‘꼴찌’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2일 재벌닷컴이 자산 상위 10대 그룹(공기업 제외)의 기업공개(상장)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롯데그룹이 81개 계열사 중 기업을 공개한 상장사 수가 8개사로 9.9%에 불과, 10대 그룹 중 꼴찌였다.
상장 계열사는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손해보험,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하이마트, 현대정보기술이다. 반면 비상장 상태인 주요 계열사는 호텔롯데를 비롯해 롯데상사, 한국후지필름, 롯데정보통신, 롯데물산, 롯데건설 등이다.
신동빈 회장은 전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대(對) 국민 사과와 함께 비상장사인 호텔롯데를 상장하고 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를 연내에 80% 이상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호텔롯데를 상장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고 해도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실제 호텔롯데의 조기 상장이 이뤄진다고 해도 롯데그룹의 계열사 기업공개 비율은 11%로 여전히 10대 그룹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 호텔롯데는 롯데건설(지분율 43.07%)•롯데물산(31.13%)•롯데쇼핑(8.83%)•롯데알미늄(12.99%)•롯데리아(18.77%) 등 한국 롯데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다량 보유한 사실상의 지주회사다. 이런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최근 신 회장이 대표이사로 등기된 11개 L투자회사들(지분율 72.65%)이다.
일본 롯데홀딩스(19.07%)와 광윤사(5.45%), 일본 패미리(2.11%) 등을 합하면 일본 자본이 99% 이상의 지분을 장악한 모양새여서 ‘국적 논란’을 잠재우기 어려운 구조다.
물론 호텔롯데가 기업공개를 하게 되면 신주 발행과 구주 매출(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매하는 것)을 통해 일본계 지분율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다. 상장회사가 되면 경영 정보가 공개되고 일반 주주들의 감시도 받을 수 있어 투명성 논란에선 다소 벗어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본계 지분 비율이 이미 99%를 넘어선 상황이라 구주 매출을 하더라도 국내 자본 비중이 최대 20% 안팎에서 더 높아지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다시 말해 일본 지분이 70% 이상 남아 ‘일본 기업’의 이미지를 벗기에는 역부족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롯데그룹이 직면한 당면과제 세 번째로는 ‘반(反) 롯데’ 정서 진화가 꼽히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전날 서둘러 그룹 지배구조 개선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확산일로에 있는 ‘반 롯데’ 정서를 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관측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경영권 분쟁으로 여론이 워낙 나빠진데다 이번에 내놓은 개선 방안 역시 ‘일본 기업’이란 이미지를 씻어버리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에 기인한다.
신 회장은 전날 사과문을 발표하며 롯데가 왜 한국 기업인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가져온 ‘반 롯데’ 정서를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는 지난해 롯데호텔을 포함한 한국 롯데 계열사들의 일본롯데에 대한 배당금은 한국 롯데 전체 영업이익의 1.1%에 불과하며 롯데호텔은 국부를 일본으로 유출한 창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롯데호텔의 주요 주주인 일본 L투자회사도 한국에 일본 자본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생긴 창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재계 일각에선 호텔롯데의 일본 지분을 소폭 낮추는 정도로 기업 오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본식 경영 방식과 오너 일가끼리 일본식 이름을 부르며 일본어로 대화하는 모습에서 비롯된 국민적 반감을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롯데를 키운 부산에서 롯데 반대운동이 일어나 롯데그룹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는 11일 오후 부산 롯데백화점 서면점에서 ‘나쁜 롯데 개혁 시민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 그룹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들 시민사회단체는 앞으로 나쁜 롯데그룹의 실체를 알리고 시민운동본부를 시민과 함께 하는 롯데 대응기구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롯데 개혁 시민운동본부를 발족해 앞으로 롯데 그룹의 각종 문제점을 시민에게 알리고 롯데 관련 백서를 발간하는가 하면 백화점, 마트, 패스트푸드점 안가기, 롯데 야구 안보기 운동을 벌이고 롯데가 진정한 향토기업이 거듭날 수 있는 제안도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당장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가 롯데그룹의 숙제다. 이에 따라 재계 안팎의 관심은 사면초가로 내몰리고 있는 롯데의 행보에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