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 채형석, 홍대시대 맞아 ‘회장’에 오를지 주목

2000년 후반부터 사실상 그룹 지두지휘에 안정적 지배력 갖춰

[KJtimes=견재수 기자]애경그룹에 이상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창업주 2세인 채형석 총괄부회장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그 이면에는 애경그룹이 42년 만에 본사를 서울 홍대로 이전해 새 출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 자리를 하고 있다.


5일 재계와 업계에 따르면 채 총괄부회장이 회장에 올라 명실상부한 그룹의 최고지휘자가 될 시기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홍대시대를 연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 채 총괄부회장이 그룹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것이라는데 대한 이견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경영일선에 나서 그룹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 사실상 그룹을 진두지휘 해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기에 모친인 장영신 회장이 82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그의 등극에 힘을 실고 있다.


게다가 그는 지주회사 지분구조만 보면 안정적인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6월 말 기준 AK홀딩스 지분 16.14%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등재돼 있으며 장 회장(7.43%)과 형제 등 특수관계인까지 포함한 지분은 모두 64.88%에 이른다.


실제 채 총괄부회장은 진두지휘에 나서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유통과 항공 등으로 다각화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됐다.


뿐만 아니다, 그는 지난 2005년 제주항공을 설립하는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이는 제주 출신인 부친의 뜻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룹이 흔들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쟁사의 견제 등으로 제주항공이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한 탓이다.


하지만 이때 그는 과감한 결단을 단행했다. 당시 항공을 살리고 면세점 사업을 정리하는 전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 같은 결단으로 그룹이 위기를 넘겼고 제주항공은 턴어라운드에 성공해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성장 가도를 걷기 시작했다.


채 총괄부회장의 과감한 도전은 계속됐다. 2012년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하고 지난해 각자 대표체제로 조직을 개편해 대표이사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올해 초 그룹의 모태인 애경산업을 유가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데 이어 지난달 42년 만에 본사를 구로에서 홍대로 이전해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물론 이전 계획을 추진한 것은 그였다.


공항철도 홍대입구역 역사에 들어선 홍대 통합사옥인 애경타워는 연면적 기준 53949(16320)로 판매·업무·숙박·근린시설 등 복합시설동과 공공업무시설동이 있다. 이곳에는 지주회사인 AK홀딩스와 애경산업, AK켐텍, AKIS, 마포애경타운 등 5개 계열사와 제주항공 국제영업팀이 입주해 모두 6개사가 한 지붕 아래에서 근무하고 있다.


채 총괄부회장은 이전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여행과 쇼핑, 생활 뷰티 등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접목시켰다. 애경타워에 제주항공에서 운영하는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서울 홍대호텔과 AK플라자에서 운영하는 AK&홍대(쇼핑몰)를 입주시킨 게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다. 애경그룹은 재계 순위 5060위로 지주회사인 AK홀딩스 등 모두 46개 계열사로 이뤄진 애경그룹을 그는 성장하고 있는 제주항공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집중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시장에 저가에 매물이 나오면 항공사 추가 인수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추가 상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애경그룹의 46개 계열사 중 AK홀딩스와 애경유화, 제주항공, 애경산업 등 4개사만 상장됐고 나머지 계열사는 비상장사이라는데 기인한다.


현재 애경그룹은 홍대시대를 연 것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퀀텀 점프를 준비하고 있다. 그룹 매출도 상반기 3조원으로 올해 처음으로 연간 6조원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채 총괄부회장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애경그룹은 장 회장의 남편이자 창업주인 고 채몽인 회장 재임 시대, 장 회장 시대, 그 우산 아래의 채형석 총괄부회장 시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채 창업주는 19546월 애경유지공업을 설립해 생필품인 세탁비누를 생산하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2년 후 국내 화장비누시장을 연 미향비누로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다지고서 서울 구로동에 유지공장을 준공했다.


화학을 전공한 장 회장이 애경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남편이 1970년 사망하고서 2년 후인 19728월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다.


장 회장은 애경유지의 지표를 화학 분야로 재정립해 원가절감, 안전관리, 품질관리, 설비투자 확대 등의 공격적인 경영을 추진했고 1973년 트리오, 우유비누 등으로 창립 이래 유례없는 최대 매출을 달성했으며 1976년 본사를 공장으로 이전해 구로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1980년대 들어서면서 그룹의 면모를 다졌고 국제화를 향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추진한 조직 확대와 연구개발, 사업영역 확장, 선진 경영기법 도입, 품질관리의 과학화 등이 한몫했다. 이후 애경유지는 1985년 영국의 유니레버사와 합작사인 애경산업을 설립했으며 1993년 애경백화점 구로점을 오픈하면서 유통업에 발을 들여놨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