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인물정보]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KJtimes=장우호 기자]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938년 3월 19일 강원도에서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 학사학위를 땄다. 1970년 2월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장, 현대건설자료부장 및 이사, 한국도시개발 사장, 현대정공 사장, 현대자동차서비스 사장, 현대강관 사장, 현대산업개발 사장, 인천제철 사장, 현대중장비회장을 역임했다. 현대정공을 경영하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1997년 기아차를 인수해 현대차를 국내에서 독보적인 자동차그룹으로 키웠다. 1999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기본이 충실해야 결과도 좋은 만큼 부품에서 성공해야 완성차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지론을 펼쳤다. 모듈의 중요성을 인식해 현대모비스의 모듈화를 추진했다.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경영권 승계다툼, 일명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 회장은 2000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현대자동차 등 10개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 딸인 이정화씨와 1962년 연애 결혼했다. 현대가 장남 故 정몽필 전 현대제철 회장의 죽음으로 차남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사실상 장남 역할을 하게 되면서 배우자 이정화씨도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했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챙겼고, 19년간 시어머니인 변중석의 병 수발을 도맡았다. 신문배달원이나 미화원들에게도 명절날 선물을 건네곤 했다고 한다.

그동안 현대차가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도 고급차 브랜드 파워와 디자인 역량이 다소 떨어진다는 업계의 평가에도 불구 10년의 시간을 투자해 2015년 11월 독립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출범시키며 세계 고급차시장을 공략하는데 나섰다.

과감하고 통큰 경영 스타일을 보여줘 정주영 명예회장이 강조했던 ‘하면 된다’와 ‘뚝심 경영’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전 부지 매입 과정에서 감정가의 3배, 입찰예상가의 2배가 넘는 10조 원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를 둘러싸고 고가 매입 논란이 불거졌으나 애초 수익성만을 따져서 입찰에 참여한 게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장 경영을 중요시해 매일 오전 양재동 본사로 출근, 업무를 직접 챙기고 있다. 2015년 12월 독자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첫번째 모델 ‘EQ900’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수시로 헬기를 타고 연구개발 기지를 방문하며 직접 업무를 챙기고 부서장의 면면을 알고 있어 현안과 관련한 이슈가 있으면 수시로 인사를 단행한다.

특히 주요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 반드시 해당 사안에 대한 확인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7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1978년 7월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입을 굳게 닫아 처벌을 피했지만 정 회장은 특가법 위반혐의로 1심 재판 때까지 75일 동안 구금됐다.

검찰이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시작한 뒤 2006년 4월 28일 900억여 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2100억 원의 손해를 끼치는 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6월 28일 보증금 10억원을 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2007년 2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 9월 항소심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전제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4월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08년 6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자연 및 환경보호 활동, 복지시설에서의 활동, 단체봉사 활동 등을 위주로 3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2016년 5월 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원회로부터 현대차가 협력사인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며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 등 6명과 함께 노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2016년 11월 현대차그룹이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2006년 비자금 사건 이후 10년만의 검찰 소환이었다.

2016년 12월 6일 박근혜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게 질문이 쏠리면서 점심 정회시간 전까지 단 한 건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이날 오후 6시 50분경 청문회가 정회하자 준비된 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조기 퇴장했다.

현대차그룹은 K스포츠와 미르에 모두 128억원을 냈다. 현대차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부탁을 받고 최순실씨가 사실상 소유한 플레이그라운드에 62억원의 광고일감을 몰아줬고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동창생 부모가 운영하는 부품회사 KD코퍼레이션에서 11억원 상당의 부품을 납품받았다.

2007년 11월 기금 600억원을 출원해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을 설립한 뒤 2011년 12월 재단 이름을 현대차정몽구재단으로 바꿨다.

2009년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뒤 매년 정밀 심장검진과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연봉으로 98억원을 받아 대기업 오너 중 가장 많은 금액을 받았다. 현대차에서 56억원, 현대모비스에서 42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정 회장과 그의 장남 정 부회장의 ‘양궁사랑’은 유명하다. 정 회장은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양궁협회 회장을 4차례 역임한 이후 1997년부터는 대한양궁협회 명예회장직을, 정 부회장이 대를 이어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또 정 회장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국제양궁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들 부자(父子)가 32년 동안 양궁 종목에 인재 발굴, 첨단 장비 등 투자한 금액은 450억원을 넘는다.

부인 이정화씨와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장녀 정선이 이노션 고문은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과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장남 선동욱씨는 지난 4월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의 차녀 채수연씨와 화촉을 밝혔다. 7개월 뒤인 11월 11일 장녀 선아영씨가 배우 길용우의 외동아들 길성진씨와 연애 결혼했다.

차녀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은 정경진 종로학원 설립자의 장남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결혼했다. 슬하에 정유미, 정유진, 정준 등 1남2녀를 뒀다.

삼녀 정윤이 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는 동갑내기인 신성재 삼우 부회장과 결혼했다가 2014년 이혼했다. 둘은 신우진, 신우택, 신우현 등 3형제를 뒀다.

장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휘문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 경영대학원 MBA를 나왔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장녀 정지선씨와 결혼해 정진희, 정창철 등 1남1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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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생년월일: 1938년 3월 19일
직업: 기업인
직함: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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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보

관계 

이름 

생년월일 

비고 

부 

정주영 

1915년 11월 25일~2001년 3월 21일 

현대그룹 창업주

 

변중석 

1921년 7월 13일~2007년 8월 17일 

 

 

정몽필 

1934년 1월 1일~1982년 4월 29일 

전 현대제철 회장 

남동생 

정몽근 

1942년 4월 11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여동생 

정경희 

1944년 

 

남동생 

정몽우 

1945년 2월 24일~1990년 4월 24일 

전 현대알루미늄 대표 

남동생 

정몽헌 

1948년 9월 14일~2003년 8월 4일 

전 현대그룹 회장 

남동생 

정몽준 

1951년 10월 17일 

아산재단 이사장 

남동생 

정몽윤 

1955년 3월 18일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남동생 

정몽일 

1959년 

전 현대기업금융 회장 

배우자 

이정화 

1939년~2009년 10월 5일 

 

장녀 

정성이 

1962년 

이노션 고문 

사위 

선두훈 

1957년 

대전선병원 이사장 

차녀 

정명이 

1964년 

현대커머셜 고문 

사위 

정태영 

1960년 4월 11일 

현대카드 부회장 

삼녀 

정윤이 

1968년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 

장남 

정의선 

1970년 

현대자동차 부회장 

자부 

정지선 

1973년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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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정보

경복고등학교 졸업(1959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 학사(1967년)
코네티컷대학교 명예인문학 박사(1989년)
몽골국립대 명예경영학 박사(2001년)
고려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2003년)
한양대학교 명예공학 박사(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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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정보

현대건설 입사(1970년)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장(1970년)
현대건설자료부장(1973년)
현대건설 이사(1973년)
한국도시개발사장(1973년)
현대정공 사장(1973년)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표이사 사장(1974년)
현대강관 사장(1981년)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1985년)
대한양궁협회 회장(1985년)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1986년)
아시아양궁협회 회장(1986년)
현대중장비 회장(1987년)
현대정공 대표이사 회장(1987년)
국제양궁협회 부회장(1993년)
현대그룹 회장(199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1997년)
국제양궁협회 명예 부회장(1997년)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의장(1998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1998년)
여수엑스포 유치위원회 명예회장(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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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2012년)
글로벌 최고 경영인상(201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2년)
글로벌 최고 경영인상(2011년)
자동차 업계 아시아 최고의 CEO(2011년)
자동차 업계 아시아 최고의 CEO(2010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2009년)
코리아소사이어티 밴 플리트상(2009년)
미국 비즈니스워크 선정 자동차부문 최고의 CEO(2004년)
몽골정부 북극성훈장(2004년)
올해의 자동차산업 공헌상(2001년)
수출산업포장(2001년)
철탑산업훈장(2001년)
올해의 자동차 공헌상(2001년)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1999년)
제25회 상공의 날 금탑산업훈장(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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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정보

현대제철 1576만1674주(11.81%)
현대자동차 1139만5859주(5.17%)
현대모비스 677만8966주(6.96%)
현대글로비스 251만7701주(6.71%)
현대엔지니어링 35만5234주(4.68%)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