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권찬숙 기자]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에 한일기업 출연금으로 지급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즉각 거부 입장을 내놔 양국의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19일 한국 외교부는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보상하자는 제안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즉, 강제징용에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피해자들이 고령이어서 조속한 구제가 이뤄져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당사자간 화해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했다"며 "일본이 이 안을 수용할 경우 일본 정부가 앞서 요청한 한일 청구권 협정 3조 1항의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협의' 절차를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이 방안을 수용하면 외교적 협의를 통해 청구권협정에 대한 양국간 입장차를 논의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외교부에 따르면 위자료는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에게만 지급되는 것으로 현재까지 3건의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금액은 총 13억6000만원이다. 일본제철이 4억원, 미쓰비시중공업이 2건으로 9억6000만원이다. 현재 대법원에는 후지코시, 히타치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총 7건 사건이 계류된 것으로 파악됐다.
◆日 외무상 "강제징용 관련 韓 제안, 수용 못 해"
일본은 즉각 거부 입장을 표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오스가 다케시(大菅岳史) 일본 외무성 보도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이 될 수 없어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며 "이 문제를 제 3자의 중재를 통해 해결하자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이유로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 배상 확정판결을 이행하지 않아 왔다. 이후 일본 정부는 지난달 20일,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강제 징용 배상 문제를 논의하자고 우리 정부에 요청해 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 측 중재위 구성 요구에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 '신중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란 입장만을 고수한 채 이외의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일본은 중재위가 꾸려지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한국 정부는 공식 입장이 전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반응을 예단하지 않겠다"면서 "일본 측의 진지한 검토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일본 기업으로서도 화해의 취지를 생각하면 참여할 수 있는 요인이 충분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거부한다면 일본 기업과 별도로 접촉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G20 韓日 회담 염두한 대안에 '반쪽짜리 합의' 우려도...
정부가 이번에 갑자기 대안을 내놓은 것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한일관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고민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을 계기로 열릴 수 있는 한일정상회담이 이 문제와 연계되면서 무산될 수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연일 한일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미국을 향해 '우리도 고민하고 있고 할 일을 한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내놓은 방안 아니냐는 시선도 제기된다.
문제는 한국정부측 대안이 한국·일본 기업의 사전 의견 수렴 없이 급하게 제안한 것이란 점이다. 한일 간 외교적 협의가 개시되더라도 협상에 난항이 예상되면서 반쪽짜리 합의란 말도 나오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일본에 이런 제안을 하기 전에 피해자나 한국 기업과 따로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상당 부분이 당사자 의견에 맡겨서 세부 내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사인 간 문제라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정부의 이같은 방안에 대해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인정'과 '사과'에 대해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입장을 내놨다.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지만, 일본이 이 제안을 수용할 경우 재단에 참가할 한국 기업은 한일협정 체결 이후 대일 청구권을 받아 성장한 포스코 등이, 일본에서는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지난 5월 법원에 압류 자산을 매각해달라는 '매각명령 신청'에 들어가 이르면 7월 이전에도 실제 매각이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