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코로나19 못다 한 이야기들③]조유안 작가…COVID-19 다이어리 in 뉴욕

“암울한 미래를 그린 SF 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 된 건가. 낯설고 두려워”
뉴요커들은 천하태평, 사람들로 붐볐지만 마스크 쓴 사람 아무도 없었다”

조유안 작가


[KJtimes]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어 괴기스럽기까지 한 타임스퀘어, 환자용 간이침대가 즐비한 센트럴파크, 보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 텔레비전에 반복해 비치고 있다. 암울한 미래를 그린 SF 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 된 건가. 낯설고 두렵다.


뉴욕에 사는 딸과 손자들을 만나러 116일 미국으로 떠났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기기 직전이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딸과 내 품에 달려드는 손자들을 안으며 행복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 내가 해주는 음식은 무조건 '골든 음식'이라며 엄지를 치켜드는 녀석들 때문에 신이 나서 주방을 오갔다.


엄마를 이곳저곳 구경시켜주고 싶었던 딸은 주말을 끼고 10일간 직장에 휴가를 냈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맛있는 식당을 찾아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공원을 걸었다. 음악회에 가고 박물관도 관람 했다. 팔짱을 끼고 시시덕거리며 한가롭게 돌아다녔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서서히 퍼지더니 슈퍼 전파자가 나오자 급속도로 확진자가 늘기 시작했다. 매일 인터넷으로 국내 사정을 접하며 안타까워했다.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귀국하지 말라고 전화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뉴욕시에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두세 명이던 것이 며칠 새 수십 명이 되고 다시 100명이 넘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스스로 외출을 삼가고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뉴요커들은 천하태평이었다. 물론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없었다.


워싱턴스퀘어 파크에 구름 떼처럼 사람들이 몰려와 웃고 떠들며 버스킹을 감상하고 롤러블레이드를 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관객으로 가득 찼으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인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타임스퀘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곳을 상징하는 붉은 계단 뒤 전광판 속에서 방탄소년단이 웃고 있었다. 지붕 없는 붉은 이층버스는 연신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에 바빴다.



뉴욕에 간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딸이 국내 근무하기 전 또 한 번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하기에 새로운 발령지인 볼리비아로 떠나야 했다. 집은 계약기간이 한 달 정도 남아있었다. 뉴욕 상황은 간과한 채 남은 기간은 내가 있겠다고 했다.


비싼 렌트비를 날리는 것도 그랬지만 다시 가기 힘든 곳이니 간 김에 더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쓸 최소한의 물건만 남겨둔 채 이삿짐이 모두 나가고 딸도 아이들도 없는 텅 빈 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어느 날이었을까. 손 꼼꼼히 씻기, 거리 두기, 기침 예절 등을 설명 하는 안내방송을 버스에서 들었다. 긴장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였다.


거리의 공기는 하루하루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이었지만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없었다. 아파트 앞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놀고 마트에는 식품이 넘쳐 났으며 가는 곳마다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정말 마스크를 쓰고 싶었다. 관객으로 가득한 공연장에 있거나 어둡고 비위생적으로 느껴지는 지하철을 탈 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은 환자라는 인식이 팽배한 데다 누구나 코로나의 발원지가 중국이라고 아는 상황에서 동양인이 마스크를 쓸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갔던 313, 항상 북적이던 미술관 앞은 한산했고 현관에는 고객들의 건강을 위해 오늘부터 당분간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당황했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전국에 코로나19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으며 오늘 0시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정에 어두운 나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모든 스케줄을 뒤로한 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은 더러워.”


뒤편 멀리에서 이런 소리가 두 번이나 들려왔다. 한적한 거리이니 아마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코로나의 위기감으로 인한 인종차별이 벌써 시작되는가 싶어 씁쓸하고 두렵기도 했다.


집에 가기 전 늘 들리던 동네 마트에 갔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피해 가며 바삐 장을 보는 모습이 역력했다. 긴장감이 돌았다. 흠이 있는 과일만 조금 남았을 뿐, 빵도 고기도 없었다.


더구나 셀 수 없이 많은 종류로 넘쳐 나던 냉동식품 코너에는 단 한 개의 물건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참을 망연자실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워 보이던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냉동식품이 쌓여있던 서늘하고 흰 바닥이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처럼 느껴졌다.


접은 휴지로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안면 있는 할머니에게 눈인사를 했다. 며칠 전만 해도 상냥한 미소를 짓던 그녀가 샐쭉 눈을 내리깔고 모르는 체했다. 위기는 개개인의 민낯을 드러나게 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다. 4층에 내려 복도를 걷는 내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가뜩이나 휑하던 집이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태평해 보이는 분위기에 휩쓸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쏘다녔으니 걱정이 밀려오는 건 당연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혹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나. 의료보험도 없고 병원 문턱도 높으니 꼼짝없이 집에 갇힌 채 앓아야겠지. 아니, 며칠 있으면 계약 기간이 끝나니 그나마 머무를 집도 없잖아. 그동안 안개 속에서 희미해 보이던 불안의 그림자가 성큼 다가와 눈앞을 가로막았다.


어려울 때 부모 찾는 자식처럼 나도 한시바삐 내 나라로 돌아가고 싶었다. 조국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이렇게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던가. 출국까지 남은 기간은 3.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팔을 X자로 만들어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까짓 사흘 금방 가. 그동안 조심조심,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보자.”


한국을 떠난 지 두 달 만인 316,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대한항공 카운터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미국 속에 작은 한국. 마치 치외법권 지역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익숙한 내 나라의 거리, 떠나기 전보다 차량은 현저히 줄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다행히 자가격리를 의무화하지 않을 때 입국했지만 스스로 자가격리 중이다. 내가 아파도 큰일이지만 혹시라도 내 부주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새벽 배송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세상 편한 의자에 앉아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본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사부작사부작 물건을 정리한다. 좋은 옷 멋진 가방도 필요 없다. 부드러운 침구와 부엌살림 몇 개면 족하다.


갇힌 생활이 갑갑할 때면 드넓은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던 날을 떠올린다. 채 봄이 오기 전이었는데도 잔디는 한여름처럼 푸르렀다. 잔물결이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빛 호수는 신비로웠고 영화에서 자주 보던 낯익은 분수도 반가웠다.


하지만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존 레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스트로베리 필즈 메모리얼이었다. 그가 작곡한 이매진 (imagine)’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가사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울컥해진다.


공원이 하도 넓어 구글 맵을 보며 찾아간 그곳. 바닥에 흰색과 회색의 수많은 작은 타일을 사용해서 만든 큰 원이 있고 원 한가운데 에는 ‘IMAGINE’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글자 위에 누군가 바치고 간 붉은 장미 한 송이, 생각보다 소박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존레넌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만든 곡을 버스커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사람들은 따라 불렀다.


상상해 봐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오직 인류애만 있겠죠.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이 배려하며 살아가는 날을 그러면 세상은 마침내 하나가 되겠죠.”


코로나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을 치르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깊은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나와 내 가족과 우리나라만 잘 살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거.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을 배려하려고 쓰는 마스크처럼 마음의 마스크도 필요하다는 거. 불행의 원인은 많이 소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끝없이 소유하기를 원하는 탐욕 때문이라는 거.


한 영국 젊은이가 50년 전에 그렸던 세상. 그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했던 세상. 사람들이 지금의 위기를 딛고 회복한 후에는 그가 염원했던,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누구나 바라고 있을 모두가 하나 되는 세상이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기를 꿈꾸어 본다.

 

[약력 : 조유안]

 

-수필




-수필낭송가




-2008<에세이문학> 봄호로 등단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