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外交文書>冷戦時代の82年 北朝鮮と情報戦展開

【ソウル澤田克己】南北朝鮮が国際社会での影響力拡大を競っていた冷戦時代の82年、韓国は、北朝鮮の強制収容所の実態を外国メディアを通じて暴露する工作を仕掛けていた--。韓国政府が31日に公開した外交文書で、当時の情報戦の様子が明らかになった。

国家安全企画部(現国家情報院)の文書などによると、韓国政府は70年代末から80年代初めにかけて、韓国へ亡命した北朝鮮の元情報機関員らを通じ、強制収容所8カ所に約10万5000人が入れられているという情報を入手した。

韓国政府は、北朝鮮が金日成(キム・イルソン)主席(94年に死亡)の誕生日を祝う4月15日の直前に暴露工作を行うことを計画。82年4月11日付の米紙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に「特ダネ」として、強制収容所に関する記事を掲載してもらうとともに、他国メディアにも積極的に働きかけた。結局、約2週間で53カ国150以上のメディアに取り上げられたという。

韓国は国連人権委員会や国際人権団体「アムネスティ・インターナショナル」にも北朝鮮の人権侵害を訴える計画を立案。50年代末からの「帰還事業」で元在日朝鮮人の配偶者と共に北朝鮮へ渡った日本人について、外務省と安企部が親族などを探し出す一方、大韓赤十字社がその親族に協力を働きかけるという形で役割分担をしていた。

 

毎日新聞 4月1日(月)0時36分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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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문서> 냉전 시대 1982 북한과 첩보전 전개

서울 사와다 카츠미 남북한이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 확대를 겨루고 있던 냉전 시대인 1982, 한국 북한 강제 수용소 실태 외국 언론을 통해 폭로하는 공작을 감행했다. 한국 정부가 31일 공개한 외교 문서에서 당시 첩보전 모습이 나타났다.

국가 안전 기획부 (현 국가 정보원) 문서 등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한국 망명한 북한 정보 기관원들을 통해, 강제 수용소 8개소 10만 5000명이 수용 되어 있다는 정보 입수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김일성주석 (1994년 사망)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4월 15 직전에 폭로공작 할 계획. 1982 4월 11일자 미국 뉴욕 타임스 "특종" 으로, 강제 수용소에 관한 기사를 게재하도록하고, 타국 미디어 적극적으로 촉구했다. 결국 약 2주간 53 개국 150개 이상의 미디어로 다루어 졌다고한다.

한국은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 인권 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에 북한 인권 침해 호소하는 계획 입안. 1950년대 말 "귀환 사업" 에서 재일 조선인 배우자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인에 대해 외무성과 안기부 친족 등을 찾아내는 한편, 대한 적십자사가 친족 협력 움직이게하는 형태로 역할 분담했다.

 

마이니치신문 4월1일(월)0시36분 배신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