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현수 기자]“임금의 3분의 1은 강제 저금되었고 3분의 1은 고향에 송금한다고 했지만 귀국해 보니 송금이 전혀 안됐다. 식사는 외국 쌀로 지은 밥과 국뿐이었다. 밥에 주먹 정도 크기의 감자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밥은 겨우 세 숟가락 분량밖에 되지 않았다.”(1943년 전북 김제군에서 군함도로 끌려온 윤춘기 할아버지)
“도주해서 잡히면 고무 튜브로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맞고 고문을 당했다.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1945년) 원폭 투하 후 8월 18일쯤에 청소를 하러 나가사키 시내에 갔을 때 ‘인간 지옥이 여기구나’라고 생각했다.”(14세이던 1943년 전북 익산에서 군함도로 강제동원된 최장섭 할아버지)
일본 시민단체가 ‘군함도’ 진상은폐를 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꼼수’에 맞서고 나섰다. 이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는 ‘군함도’ 진상 알리기에 발벗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재작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나가사키(長崎)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등 메이지 산업시설의 강제동원 역사 은폐에 나서고 있는 시점이어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사실 일본 정부는 각종 꼼수를 동원해 은폐에 급급한 상태다. 일례로 세계유산 등재 시 약속한 강제동원 실상을 알리는 정보센터를 하시마에서 1000㎞를 훌쩍 뛰어넘는 도쿄에 설치하기로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는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동원’이라는 책자를 냈다. 그리고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을 속속들이 고발했다.
한국과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들이 함께 참가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이라고 소개하면서 ‘군함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리며 하시마 전체가 탄광으로 바다 곳곳으로 갱도가 펼쳐져 있다’고 밝혔다.
책자에서는 지난 1939년부터 하시마와 바로 옆 섬에 있는 다카시마탄광에는 4000명 정도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됐고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에게 하시마는 쇠창살 없는 감옥이자 공포의 노동 현장이었으며 탈출은 어려웠고 끌려간 이들에게 그곳은 지옥섬이었다고 가혹했던 실태를 폭로했다.
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군함도에는 1939년부터 1945년에 걸쳐 1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장(火葬) 관련 문서로 확인된 사망자는 50명 가량으로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사고로 변을 당했다. 탄광 매몰에 의한 질식사, 압사, 외상에 따른 사망, 여기에 탈출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익사도 있었다.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관계자는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설명 속에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되는 강제노동 등 어두운 역사도 담겨야 한다”며 “이는 2차대전이 끝난 지 70여년이 지났어도 아직 강제동원·강제노동의 상처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