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릴레이인터뷰③]미얀마 킨킨탓 교수가 말하는 韓 유학생활 그리고 ‘K-방역’

<코로나 이후의 삷> 미얀마 양곤외국어대학교 한국어 학과 교수 ‘한국어 공부.코로나19’ 스토리



<KJtimes>코로나19 이후의 삶이라는 특별기획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공감과 교훈의 메시지를 찾고자 한다. 201년 8월 한국정부 초청으로 입국해 한국어 석사 학위를 취득한 미얀마 양곤외국어대학교 한국어 학과 킨킨탓 교수를 만나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으로서 겪은 한국 생활과 코로나 이후의 일상 속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KJtimes TV=김상영 기자]“여기 모두 다 마스크 착용하고 다녀.”


킨킨탓은 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잠시 미얀마에 있을 때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한국의 코로나 상황과 관련해 이 같은 문자를 받았다. 이때가 1월 말쯤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여파로 킨킨탓이 유학 중인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어 학과)에서 신학기가 2주 연기되는 등 한국 내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킨킨탓은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 논문을 써서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한국행을 주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입국했고 전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신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킨킨탓은 대구에 있는 친구들은 휴학하겠다고 연락오고 미얀마 부모님께서 건강 조심하라고 매일 전화를 했다면서 그래도 나는 코로나에 아랑곳 않고 논문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다음은 킨킨탓과 일문일답.

 

-한국에는 어떻게 해서 유학을 오게 됐나.


한국 정부에서 시행한 장학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고 거기서 장학생으로 선발돼 20188월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미얀마 양곤외국어대학교 한국어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제가 남을 가르치는 것과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사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항상 고민하고 (미얀마) 학생들에게 더 좋은 한국어 교육을 전달하고 싶은 절실함이 한국 유학을 결정한 계기가 됐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한국어는) 유사한 어휘하고 문법이 많아서 헷갈린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건 발음이다. 미얀마는 말할 때 성조(목소리가 높거나 낮게 변화하는 현상)가 있었 성조 따라 하면 되는데 한국어는 성조가 없다. (한국 사람들하고) 한국말로 대화를 하다보면 성조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미얀마가 어떤 나라인지 소개한다면.


미얀마 하면 불교나라라고 바로 떠올리게 된다. 그 정도로 미얀마는 생활 속에 불교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미얀마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는 기부 문화다. 미얀마인들의 이러한 특성은 현생의 업이 후생으로 이어진다는 불교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기부할수록 다음 생에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커진다고 생각한다. 미얀마는 돈이 있어야 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도 봉사활동이나 재능기부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얀마인들은 정이 많고 남을 잘 도와준다. 외국인 내국인 구별 없이 낯선 사람이지만 잘 도와주는 편이다.”

 


-미얀마의 코로나19 상황은.


미얀마는 3월말쯤에 해외 유입자로부터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나온 이후 300여명 발생했다. 지금은 국내 확진자가 없고 해외 유입자로부터 생긴 확진자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얀마는 처음 확진자가 발생한 날부터 정부와 위생부, 그리고 다른 봉사 단체에서 손을 잡고 코로나 방역을 위해 힘을 썼다.


코로나 확진자들과 해외에서 유입한 미얀마 사람들에게 자가격리 등의 비용을 정부에서 부담했다. 지금까지도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서 정부와 국민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전염병 사태를 극복하고 있다.“

 

-미얀마도 코로나 이후 일상에 많은 변화가 왔을 것 같은데.


코로나 이후 미얀마에서 일상생활이 온라인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고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코로나) 전에는 배달문화가 한국처럼 활성화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코로나로 밖에 많이 못나가게 되면서 배달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교육도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들도 많아졌다.”

 

-한국에서 직접 체험한 ‘K방역에 대한 생각은.


미국이나 유럽 같은 강국들이 코로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국은 엄청난 수의 진단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빠른 추적 시스템을 가동해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했다. 내국인, 외국인 구별 없이 코로나 확진자를 잘 치료해 주는 것도 코로나 확산을 막는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본다.”

 

-코로나 전과 후 일상이 어떻게 변했나.


가장 달라진 것은 마스크 착용이다. 지금은 밖에 나갈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마스크 착용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당이나 도서관, 어디가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입장 불가능하니까 마스크 착용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또 예전처럼 대면 수업보다 지금은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더 선호하게 됐다.”

 


-‘K방역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한류열풍이 뜨거웠다. 미얀마에서 한류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미얀마는 2000년에 가을동화’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한류열풍이 불붙기 시작했다. 미얀마 남녀노소 누구나 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을 좋아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케이팝을 더 열광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한국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외모나 연기력도 한류 인기의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케이팝은 댄스이나 노래 가사를 보면 신나게 즐길 수 있으니까 이것이야말로 한류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얀마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


“(한국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8월에 미얀마로 돌아가서 양곤외국어대 한국어 학과에서 근무할 계획이다. 제가 여기에서 배웠던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미얀마 학습자들에게 더 좋은 한국어 교육을 전달하고 싶다. 내년쯤 다시 한국에 와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외국인으로서 이런 인터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그리고 미얀마에 대한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

[단독]‘사라진 엄마들의 돈’… 보니코리아 아웃라스트 사태 그 후
[편집자주] 지난 2017년 6월 유아용 매트를 사용하던 아이가 잔기침을 하고 두드러기가 생겼다는 글이 인터넷 맘카페를 통해 확산되면서 대한민국 엄마들의 공분을 샀던 일이 있었다. 바로 ‘보니코리아의 아웃라스트 사태(이하 보니 사태)’다. 당시 한국기술표준원(www.kats.go.kr)은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자 ‘리콜’을 권고했다. 하지만 보니코리아 홍성우 대표는 ‘재고 소진 후 환불하겠다’는 대응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유해성 의혹을 받고 있는 제품을 끝까지 팔아치우려는 비양심적 기업이라는 비난이 들불처럼 번진 탓이다. 결국 소비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에 홍 대표는 ‘제품의 환불 및 리콜과 관련해 법적 절차에 따라 모두 처리할테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홍 대표의 사과 이후 4년째, 기회를 달라던 홍 대표와 그의 환불 약속은 세월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kjtimes>는 월매출 수십억원을 올리며 급성장하던 회사가 보니 사태 직후 선량한 소비자들을 왜 피해자 상태로 방치하게 됐는지,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그리고 종적을 감췄던 홍성우 전 대표와 최근 혜성처럼 나타난 유아용품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