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코로나19 못 다한 이야기들⑤]정선모 대표…단절 속에서 찾은 행복

정선모 도서출판 SUN 대표

 

[KJtimes]한동안 닫혀있던 문을 열고 집 근처로 산책을 나섰다. 정부에서 제시한 사회적 거리 두기시한이 끝날 무렵, 가급적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걸었다.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는 시간이어선지 벚꽃이 터널을 이룬 길은 몽환적이었다. 지금 지구상에서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아랑곳없이 꽃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연은 여전히 본래의 모습 그대로 봄을 맞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레 전 세계의 모든 것이 단절되었다. 하늘길이나 바닷길이 막히고, 국경이 폐쇄되고, 학교나 도서관 등 공공기관이 닫히고, 심지어 내가 사는 집의 문까지 걸어 잠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이 창졸간에 세상을 잠식하여 길도, 일도, 관계도 끊어놓았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들딸네 가족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주말부부인 딸과 외손자를 데리고 사는 우리 집에 중국 상해에 사는 아들네가 열흘 간 휴가를 얻어 설 명절을 쇠러 들어왔다가 발이 묶였다. 함께 온 손녀 둘이 고열이 나는 바람에 집안에서도 온 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2주간을 버텼다.


그즈음 우한 폐렴 감염자가 우리나라에도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B형 독감으로 판정되어 보름 만에 마스크에서 해방되었지만 세상은 그 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어도 2주간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열이 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끼리 나름대로 철저히 분리하여 생활하였다. 집안에서도 온 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식사와 설거지는 따로 하며, 식기는 바로 끓는 물로 소독하였다.


사용한 휴지는 따로 비닐봉투에 넣고, 손이 닿는 곳은 수시로 소독하였다. 한 공간에 있어 언제 전염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10세 손녀부터 72세 할아버지까지 8명 대가족이 함께 수칙을 만들고, 그걸 지켜내는 모습을 보며 일종의 전염병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초등학생 손주들은 평상시처럼 수업시간에 맞춰 집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오후에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뛰어놀도록 했다. 체육교사를 자처한 할아버지에게 두발 자전거 타기도 배우고, 뒷산에 가서 개구리알도 관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로 인해 학원에 가느라 바빴던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걸 보니 아이들 본래 모습을 되찾은 듯하다. 햇빛 가득한 놀이터에서 두세 시간씩 뛰어노느라 까매진 얼굴, 쿵쿵거리며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 눈동자까지 웃는 것처럼 반짝이는 표정, 공부만 할 땐 보지 못했던 활기찬 모습들이다.


이번 기회에 새삼 일깨운 가치는 대가족 제도였다. 갑작스레 대가족이 된 우리 집은 가족회의를 열어 아들네가 머무는 동안 최대한 유쾌하게 지내자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집안일을 철저히 역할분담하고, 손주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정했다.


처음엔 서로 힘든 부분이 적지 않았다. 각자의 생활리듬도 깨지고,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불편함도 많았다. 초등학생이 세 명이니 사소한 일로 툭탁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조금씩 적응해나갔다.


함께 생활한지 넉 달이 지난 지금은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예절을 절로 익히고, 감정이 대립되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도 배운다.


막내손녀는 툭하면 우는 걸로 속상함을 드러내었는데 이제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애쓰고 있다. 가족 간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즈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살아남기였다. 대가족의 세끼 밥상을 차려내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무사히 아들네가 상해로 돌아갈 때까지 조심 또 조심하느라 외식도 쇼핑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고, 여벌옷을 두세 벌만 가져왔는데도 잘 버티고 있다. 예쁜 옷만 찾던 아이들은 이제 뛰어놀 때 편한 옷을 더 좋아하여 제 사촌오빠 옷도 서슴없이 입는다.


예상치 못했던 세상과의 단절은 또 다른 단합을 불러온 셈이다. 밖에서 찾던 행복은 내 안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고, 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애썼던 모든 활동은 이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집을 알아보고, 해외여행을 준비하던 일들이 멈춘 자리에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들어섰다. 위대한 건축물이나 웅대한 자연경관을 선망하며 그토록 여행 가방을 자주 쌌는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우리 동네 벚꽃길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한 지금은 그러한 욕망이 사라지고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의 생존양식이 소유에서 존재의 축으로 저울추가 기우는 현장을 목격한 셈이다.


어떠한 인권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생존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사람의 피부색, 종교, 문화, 성별,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바이러스는 침투했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며 그 어디에서도 인간의 존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성과 지성의 힘으로 버텨왔다고 믿었던 인류는 세균의 침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다시는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뉴스를 접하니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글로벌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아들도 이참에 생각에 변화가 온 듯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자기 분야의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언제 중국의 국경 봉쇄가 풀릴지 아직 기약도 없지만, 걱정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온 봄꽃 몇 포기를 아이들과 화단에 심으며 우리 집에도 화사하게 꽃이 피어나기를 꿈꾸어본다.

 

[약력 : 정선모]



- 도서출판SUN 대표


- 수필가


- 한강문학작가회 회장


-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부회장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