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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플라스틱 협약 또 '빈손'...보이지 않는 손, 석유화학 로비의 그림자

부산에 이어 제네바도 무산…협상장 장악한 산업계 로비스트, 생산 감축 조항 무력화
"로비스트가 대표단 보다 많다"...산업계의 조직적 방해, 유엔의 공정성마저 흔들다

                                               [영상=정소영 기자]

[KJtimes=정소영 기자] 지난 5일부터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차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2) 협상이 결국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이는 지난해 11월 부산에서의 무산에 이어 두 번째 ‘빈손’이다. 공식적인 원인은 협상 문안에 대한 회원국 간 이견이지만, 협상장을 지켜본 시민사회는 “실패의 배후에는 석유화학 업계의 집요한 로비가 있다”고 지적한다.

◆ "산업 로비스트가 대표단보다 많다"

국제환경법센터(CIEL)에 따르면, 이번 협상장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234명의 석유화학 및 화석연료 업계 로비스트가 등록됐다. 이는 EU 대표단(233명)보다 많고, 한국 대표단(25명)의 열 배에 달한다. 산업계가 협상장을 사실상 장악한 셈이다.

실제로 협상 막바지에 공개된 의장 문안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화학물질 규제 조항이 빠져나간 것은 업계의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콜롬비아와 파나마 등 강력한 협약을 요구해온 국가는 즉각 반발했지만, 다수의 대표단은 힘을 쓰지 못했다.



제네바 회의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협상이 가열된만큼 업계 로비스트 규모도 커졌다. 이 규모는 단지 숫자가 아니라 거대한 자본과 거대한 영향력을 상징한다”며 “한국 정부를 포함해 이곳 제네바에 모인 모든 회원국은 산업의 이익이 아닌, 우리의 삶과 미래세대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나라 캠페이너는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탈플라스틱 정책을 준비 중이지만, 진정한 전환을 원한다면 지난해 부산에서처럼 산업의 입장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며 “생산 단계까지 포함하는 감축 로드맵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출발점은 이번 제네바 회의에서 생산 감축을 명시한 강력한 협약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반복되는 '절차의 함정'

석유화학 업계의 전략은 단순하다. 절차를 지연시키고, 협상 수준을 최저치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각국이 생산 감축, 유해성 규제, 책임 분담 등에서 진전을 이루려 할 때마다 업계는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거나, 정부 대표단을 대상으로 막강한 로비전을 벌여왔다.

그레이엄 포브스(Graham Forbes) 그린피스 글로벌 플라스틱 캠페인 리더는 “제네바에서 협약 성안에 이르지 못한 것은 전세계에 보내는 경종이어야 한다”며 “대부분의 국가가 강력한 협약을 원하지만 소수의 방해국들이 ‘절차’를 악용해 강력한 협약 성안을 방해하고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망설일 때는 지났다.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려면 화석연료 및 석유화학 업계의 이익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며 “이들 산업계는 순간의 이익을 위해 전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으려고 한다. 우리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포함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이 필요하다. 세계 지도자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포브스는 “각 협상 라운드마다 화석연료 및 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들이 각국 대표단보다 협상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며 “이들은 강력한 협약 성안을 방해하고 있으며, 그린피스는 유엔이 직접 이들을 협상 현장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유엔의 공정성 시험대

또 다른 문제는 유엔의 협상 구조 자체가 산업계에 지나치게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산업계 로비스트들은 공식 옵서버 자격으로 입장해 각국 대표단과 접촉했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회의장 접근조차 제한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그린피스는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서 직접행동을 벌이며 “유엔이 산업계 로비스트를 협상장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라는 현수막은 시민사회가 느끼는 절망감을 상징한다.

한편 부산에 이어 이번 제네바 회의에서도 한국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폐회 직전 대표단은 “가교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사회는 “가교가 아니라 방관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국내적으로 ‘탈(脫)플라스틱 로드맵’을 준비 중임에도 국제 협상장에서는 분명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부족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산업의 벽 넘어설 수 있나

결국 제네바 협상의 결렬은 단순한 ‘국가 간 합의 실패’가 아니라 산업 이익과 인류 생존권의 충돌이라는 근본적 갈등이 낳은 결과라고 시민사회는 입을 모은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려면 석유화학 업계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포브스 리더의 이 말은 이번 협상의 본질을 꿰뚫는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화석연료와 석유화학 업계의 이익에 맞서는 중대한 싸움으로 변모하고 있다. 

부산에 이어 제네바까지, 두 번의 협상이 빈손으로 끝난 지금, 과연 다음 협상은 플라스틱 오염의 종식을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모범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위한 담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다음 협상 테이블에 전 세계의 시선이 다시 한번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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