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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성지인데 접속 불가?"... 중앙집중식 전력망의 역설

핵심지 호남·제주 전역 '계통 포화' 변전소 지정…2031년까지 신규 접속 중단, 초유의 병목 현상 발생
재생에너지 병목 현상, '기술' 아닌 '구조'의 문제…"전기, 지역서 직접 사고파는 시대 열어야".
기후솔루션, 배전망 중심 PPA 제안, 대기업 중심 직접 PPA 탈피해 다수 사업자 참여 허용 촉구



[KJtimes=견재수 기자] 정부의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을 위해선 포화 상태인 송전망 확충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 내에서 직접 소비하고 거래하는 ‘지역주도형 전력시장’으로의 구조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100GW 구축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재생에너지 발전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신규 발전소 접속이 막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호남과 제주를 중심으로 전력계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소비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상호 연결된 일련의 전력 설비 네트워크)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오히려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 정책 연구기관인 기후솔루션은 지난 12일 발표한 보고서 '지역주도형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전력시장 개선 방안'을 통해, 이러한 병목 현상의 원인이 기술이나 주민 수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집중형 전력시장 구조에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방식만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며 지역이 전력 생산과 소비, 거래의 주체가 되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중심지일수록 접속이 막힌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약 30GW 수준이다. 정부의 2030년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를 3배 이상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전력은 2024년, 전국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했는데, 이 가운데 호남과 제주 지역은 모든 변전소가 포함됐다. 이는 해당 지역의 전력망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 조치에 따라 이들 지역에서는 송·변전 설비가 증설되는 2031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계통 접속이 사실상 제한된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가장 많이 들어선 지역이, 아이러니하게도 재생에너지 확대의 발목을 잡는 구조로 묶여 있는 셈이다.

◆송전망 확충만으로는 2030년을 맞출 수 없다

정부와 전력 당국은 이러한 문제의 해법으로 초고압 송전망 확충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통해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대규모 송전선을 빠르게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기후솔루션은 이 방식이 시간적·사회적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345kV급 송전선 하나를 짓는 데 평균 9년이 걸리는 데다, 이미 계획된 송변전 사업의 절반 이상이 주민 반발과 환경 문제, 인허가 지연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다시 수도권으로 보내는 구조에만 의존하면, 전력망 문제 해결에 막대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전기는 지역에서 쓰게 해야"

보고서가 제시하는 대안은 ‘지역주도형 전력시장’이다. 핵심은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하고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의 99%는 10MW 미만의 소규모 발전소이며, 대부분 배전망에 연결돼 있다. 기후솔루션은 이 점에 주목해, 대규모 송전망 대신 배전계통을 활용한 지역 전력시장을 구축하면 재생에너지 수용 능력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사례도 있다. 파주시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지역 PPA(전력구매계약)를 통해 중소기업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이 방식은 한전 요금이나 민간 PPA보다 저렴한 전기를 제공하면서도, 지역 내에서 전력 거래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델로 평가된다.

◆중소기업·소규모 발전소도 참여해야

기후솔루션은 현행 직접 PPA 제도가 대규모 사업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중소기업과 소규모 발전사업자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여러 발전소와 여러 수요자가 함께 참여하는 집합형 PPA를 허용하고, 인근 지역에서 생산·소비되는 전력에 대해서는 망 이용 요금을 낮춰주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지방정부와 지역 에너지공사가 재생에너지 전력공급사업자나 가상발전소(VPP) 운영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면,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지역 산업 경쟁력과 전기요금 부담 완화까지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력망 논쟁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기후솔루션 김건영 변호사는 “전력망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누가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되느냐라는 구조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을 계통포화로 묶어두고 송전망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 목표도, 지역 균형발전도 달성하기 어렵다”며 “지역이 전력을 직접 생산하고 소비하고 거래할 수 있는 전력시장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전은 분산에너지법 시행에 맞춰 배전계통운영자(DSO) 역할을 강화하고, 지역 단위 전력망을 직접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반응(DR) 등을 묶어 운영하는 지역 유연성 시장도 도입될 예정이다.

다만 기후솔루션은 한전이 발전 자회사까지 보유한 상태에서 시장 운영자 역할을 동시에 맡을 경우, 공정성과 경쟁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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