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토크

“경청의 파워가 소통을 리드한다”

 

대화할 때 말하는 것보다 잘 들어주는 게 소통을 잘 이루는 방법이다. 조물주가 입은 하나, 귀는 두 개를 만든 건 말하기보다 잘 들어주라는 의미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말하는 것 에 더 열중하며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길 원한다.

 

누구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본인은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지는 생각해보지 않는다. 어느 심리학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 부부 2만 커플에게 행복한 이유를 물어봤더니 배우자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라는 답이 80% 이상이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간에도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줘서 행복하다는 대답이 나오는 걸 보면 사람은 모두 자기 말에 관심 둬주기를 바란다는 걸 알 수 있다. 관심이 없다면 상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느낌을 주게 되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의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말을 중단하게 된다.

 

- “넌 왜 내 말을 잘 듣질 않아?”

 

- “엄마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있어요?”

 

- “당신은 자기 말만 고집하지,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잖아.”

 

- “부장님은 아랫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질 않아요.”

 

- “넌 단점을 지적하면 말을 중간에 잘라버리는 습관이 있어.”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대부분 이렇게 상대한테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푸념하며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상대에게 그런 푸념과 원망의 대상이 아닌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담아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 다 옳다고 인정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바라건대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자세를 갖자.

 

경청은 대부분 비언어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말하는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며 들어주는 게 좋다. 빤히 쳐다보면 그 말에 반감을 보인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긍정적인 눈빛으로 바라봐줄 때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편안한 웃음을 머금고 들어보자.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앉아 들으면 어디 말해봐라는 인상을 주어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말문이 막힐 수 있다. 그리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의자에 기대앉아 너무 거리감을 주는 것도 반감을 불러올 수 있으니 주의하자.

 

[정혜전의 오피스토크는

 

도서출판 비전코리아가 출간한

 

<착한 말, 착한 대화>

 

내용으로 연재합니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