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토크

“상대를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이 바뀌어라”


[KJtimes=정혜전 칼럼리스트]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야지 절을 옮길 수는 없다. 회사가 싫거나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싫다면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다.


싫다 싫다외쳐보았자 스트레스만 쌓이게 된다. 피가 섞인 자식도 내 맘대로 바꾸기가 힘든데 하물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고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있을까.


우리 부장은 너무 꼼꼼해서 줄 맞춤까지 신경 쓰고 나무란다니까라고 푸념하며 스트레스를 받아보았자 부장은 바뀌지 않는다. 늘 같은 걸로 꾸지람을 듣는 자신만 손해인 것이다.


부장의 성격이 그렇다면 똑같은 일로 싫은 소리 듣지 않게 맞추어 주는 것이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는 방법이다. 부서를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부부간에도 늘 같은 것으로 싸우며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고 원망만 늘어놓아 적과의 동침을 만들어 버린다. 한쪽이 자신의 성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감정싸움은 끝나지 않게 된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닌 상대도 힘겨워 서로가 힘든 생활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사람 싫은 것만큼 힘든 게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힘든 것만을 생각하며 상대에게 변화를 강요하기까지 한다. 강요당하는 입장에선 어떨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이다. 볼일이 없다면 변화를 강요하기도 자신을 바꿀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관계를 끊거나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상대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자신을 바꾸는 것이 현명함이다. 사람 관계의 정답은 없다. 서로 사고나 언행이 맞느냐 안 맞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절대 이해불가는 없다. ‘내 인생에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다는 말로 상대에게 단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살인을 한 것도 사기를 쳐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과 잘 맞지 않다거나 상대의 성향이 특이한 것인데 말이다.


물론 자신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경우라 이런 단정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자신에겐 크게 상처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긴 하다. 지나치게 독선적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면 이해 불가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작은 것들, 특히 성향이 맞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단정적 평가를 내리지 않도록 하자. 인연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봐야 할 사람이라면 가슴속에 담아둔 절대 이해 불가의 평가 딱지는 자신에게 가장 큰 힘겨움 을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는 여백의 공간을 남겨 두는 것이 좋다. 조금의 거리감을 주며 이해하는 척, 맞추어 주는 척 하는 것 또한 자신의 정신건강이나 대인관계의 폭을 위한 현명한 사고이다.


상대에게도 절대 이해 불가인 사람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생각해 보자. 서로가 상대에 대해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면 신경전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둘만의 문제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남기게 될 것인가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자. 성격의 변화를 강요당하는 건 유쾌할 수 없다. “성격상 문제가 있다”, “자신을 잘 파악해 보라는 말들을 들으며 자신을 되돌아 볼 사람은 거의 없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상대에게 이런 말들 을 들으면 자신을 되돌아 보기는 커녕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악 감정이 쌓이게 되고 반발심이 앞서게 된다.


그런 말을 한 사람에게 변화되는 걸 보이고 싶지 않은 오기와 자존심에 오히려 더 강한 성향을 나타내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상대의 성격이나 성향의 문제점 지적은 상대가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관계 악화의 기회를 만들어 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피곤하고 함께 하기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관계 청산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고 혼자만 생각하고 표현하지 말고 대해 주면 된다.


이해의 한계를 느낄 지라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현명한 처신이다.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혼자의 판단과 생각은 혼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라도 누설이 되면 비밀이라는 건 없어지게 된다. 직접 듣는 말도 기분 상하지만 간접으로 듣는 나쁜 평가는 기분만 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강한 성향에 불을 지르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자신과 잘 맞으면 좋은 사람, 잘 안 맞으면 나쁜 사람이라 평가를 내리게 된다. 자신은 심사위원처럼 평가를 내리면서 타인의 평가에는 귀를 닫아버리거나 불쾌하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상대도 또한 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관계 유지를 해 나가야 한다면 상대의 변화를 강요하거나 희망하기 전 자 신의 성향도 되돌아보고 자신을 바꾸어 보는 것이 다양한 부류들과 모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길이다.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운 일인데 사람들은 상대가 변화하기를 바라며 신경전을 벌이고 만다. 상대가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강해 신경전을 줄이려 자신을 바꾸어 나간다면 좋은 일이지만 이런 일은 아주 극소수이다.


고집스러움이 강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상대가 변화하기를 강요할지도 모른다. 같은 성향끼리 만났다면 그 관계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만다. 사람 관계의 신경전은 무엇이 정답이라는 기준이 없다.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