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석유화학과 방산산업 분야의 4개 계열사 매각·인수에 합의했다. 매각·인수 금액이 1조9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빅딜’이다.
저상장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국내 굴지의 그룹 간 자발적인 빅딜은 의미가 남다르다.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문어발식 확장 전략보다는 ‘되는 사업’에 올인하겠다는 의지가 바탕에 깔려 있다.
26일 삼성전자 등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의 주요 주주사들은 한화그룹에 1조9000억원에 해당 계열사들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한화도 같은 합의 내용을 토대로 (주)한화, 한화케미칼, 한화에너지 등 3개 계열사가 삼성 계열사 4곳을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다만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38.4%)인 삼성물산은 18.5%의 지분을 남겨 한화와 화학 분야에 대한 협력 관계를 유지키로 했다. 삼성과 한화는 내년 1~2월 실사와 기업결합 등 제반 승인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이번 딜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빅딜로 삼성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면서 IT·전자와 금융, 건설·서비스 분야에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를 극대화하게 됐다.
사실 삼성에게 석유화학과 방산분야는 의미를 두기 어려운 사업이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주력사업으로 글로벌 IT기업의 위상에도 맞지 않는다. 한계에 봉착한 스마트폰 사업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삼성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지만 석유화학과 방산분야에 집중도는 크게 떨어져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매각 대상 계열사의 주주사들에게 들어오는 매각 대금을 신사업과 핵심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한화에게도 의미는 크다. 주력사업인 석유화학과 방산 분야에서 사업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룹의 위상을 한단계 격상시키는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다소 무리한 인수가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으나, 그정도의 계산도 못하고 인수에 나설 한화가 아니다.
이번 인수로 한화의 방산 부문의 매출은 1조원 규모에서 약 2조6000억원으로 증가해 국내 방산업체 1위로 도약하게 된다. 석유화학에서도 매출 규모는 18조까지 증가해 국내 최대 규모로 격상된다.
사실 이번 빅딜은 국내 초대형 인수합병(M&A) 역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국내 기업의 초대형 M&A의 경우 사실상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실제 하이닉스를 인수한 현대전자는 2001년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하이닉스는 2012년 SK에 인수될 때까지 존망을 걱정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특히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확장 전략이 일반화된 재계에서 이번 빅딜처럼 과감하고 선제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나선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번 빅딜을 계기로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사업 구조조정 차원의 국내 그룹사 간 크고 작은 딜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과 한화의 빅딜로 외형보다는 실속형으로 대기업들의 사업구조 변화가 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례는 국내 M&A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