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코로나19 못 다한 이야기들⑥]고문수 전무…크루즈 여행에서 살아 돌아온 아내

“자가 격리가 끝나 아내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기뻤다”
“아내를 무한히 사랑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됐다”

고문수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무


[KJtimes]지난 26, 아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처제의 초청을 받아 둘째 처남과 함께였다. 셋이서 스페인으로 날아가 스페인 일대를 크루즈로 여행한 후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2~3일 머문 후 귀국한다는 것이었다. 대략 20여 일의 여정이었다.


지난해 12월 초,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 120일이었고 30번째 확진자까지 나왔을 때였다.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뒤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공포감으로까지 다가왔다.


게다가 이웃 일본에서는 크루즈선 한 척이 23일 요코하마로 돌아왔는데 110명이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솔직히 아내의 이번 여행을 다음 기회로 미루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전 예약해놓았는데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내 걱정을 뒤로하고 결국 아내는 출발했다.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아내의 빈자리가 컸다.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비운 그릇들이 쌓이면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등 소소한 집안일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우리 집이 아내의 손길에 의해 정리되고 관리되어 왔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말로 표현도 못하고 불끈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직접 해보니 힘든 일이었다. 가사 일을 묵묵히 해준 아내에게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와 처음 만난 날이 문득 떠오른다.


1972815, 그녀를 처음 만나는 날, 약속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생 머리카락을 날리는 숙녀가 사방을 살펴보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동그란 얼굴에 조그마한 입, 쌍꺼풀진 눈이며 얼굴에는 여드름 몇 점도 보였다. 짙은 파란색 미니 원피스를 입었는데 목부터 무릎 위까지 하얀 단추가 촘촘히 박혀있어 아주 세련되어 보였다. 제 눈에 안경이라지만 누구라도 반할 미모였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극히 일반적인 인사였지만 가슴이 설레었다. 한 사람이 지닌 힘이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외국계 언론회사의 한국 특파원 사무실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더운 여름 날씨인데도 떨림과 설렘이 몰아쳐왔다. 첫 대면인지라 대화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으로 갔다. 더위도 식힐 겸 갔는데 스케이트는 초보인지라 타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그녀는 미니 원피스에다 스케이트를 신었지만 잘 견뎌주었다. 넘어지면 자연스럽게 손도 잡고 껴안기도 했다. 코드를 꽂아야 전기가 오듯이 손을 잡는 순간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듯한 짜릿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연말이 가까워 오자 부모님께 지금 사귀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였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 상경하여 회사 근처의 여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셨다. 퇴근하자마자 아버지를 뵙고 여자 친구와 함께 인사 겸 식사를 모시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대뜸 만나지 않으면 안 되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잠시 선잠에 든 사이 꿈을 꾸었다고 하셨다.


어느 마을에 엄청난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다 쓸어버렸는데 유달리 한 논의 벼들은 홍수가 지나간 다음에도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고 했다. 여관 주인에게 조금 전 꿈 얘기를 했더니 근처의 용한 점쟁이를 소개하여 찾아갔는데 한마디로 결혼 운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자칫하면 결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갑자기 내 가슴은 검게 타들어갔다.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으면서 이 난관을 해결해 나갈 방법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버지, 용하다고 소문난 철학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번 더 물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녁식사 후 그곳을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근처에 여자 친구의 집이 있었고 길 양쪽에는 철학관이 많았다. 아무데나 가보자며 근처의 한 철학관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점쟁이가 말했다.


홍수가 쓸고 간 논에서 한 논의 벼들이 쓰러지지 않고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은 수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이지요. 수확을 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니 금년 안에는 결혼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내년에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두 사람을 보니 사주팔자가 아주 좋은데요.”


계속하여 두 사람의 앞날에 대해 상세히 풀어주며 결혼 운이 좋다고 했다. 잠자코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미소를 띠면서 긍정적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다.


철학관을 나오자 아버지는 다시 상경하려면 힘들고 여자 친구의 집이 근처라니 가보겠다고 하셨다. 집에 도착하여 장차 장인, 장모될 사돈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소싯적에 한학을 배운지라 사돈 내외와 함께 가문 및 족보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기도 했다. 모두가 기분 좋게 헤어졌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장모님도 어느 날 독립문이 있는 동네의 한 우물에 딸이 빠지는 꿈을 꾸셨다고 했다. 꿈이 섬뜩하여 해몽 책을 찾아보았더니 결혼만은 길하다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이 독립문 근처 영천이라는 말을 듣더니 결혼할 팔자라고 하셨단다.



우리 둘은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공동 목표를 갖고 있었다. 먼 항해를 위해 함께 노 젓기를 할 것을 다짐하면서 6개월 정도 사귀다 이듬해 2월에 결혼했다. 우리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아버지와 장모님의 꿈이, 즉 하늘의 뜻이 우리 둘의 미래를 만들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이 되어 주었다.


아내가 여행을 떠난 후에 코로나 확진자는 세계 곳곳에서 더욱 급증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에 관광객과 직원 등 3700여 명이 묶여있는 내용,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 방법 등을 카톡으로 보냈다. 심히 걱정되니 건강 조심하고 무사한 여행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비빔국수를 만들어 응접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아내가 곁에 없는 허전함과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며칠 뒤 아내는 붉은색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와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매사 조심하라고 했는데 거리 두기를 하지 않고 무대에서 춤까지 추다니!


20여 일이 지나 무사히 귀국한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약 2주 정도 스스로 자가 격리를 했다. 그때 보낸 동영상은 원형무대가 있는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크루즈선 직원이 다가와 손을 끄는 바람에 얼떨결에 끌려가 추게 됐다고 했다. 그 나이에도 낯선 사나이가 손을 잡아줄 정도라니 은근히 샘이 나기도 했다

 

예전에 아버지의 홍수 꿈과 장모님의 우물에 딸이 빠진 꿈이 모두 물과 관련 있고 결혼해도 좋다는 해몽 덕에 결혼할 수 있었으니 이번에 크루즈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은 어쩌면 나와 결혼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가 격리가 끝나 아내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무탈하게 장거리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내에게 무언의 박수를 보냈다.


집콕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코로나 이혼이 성행한다는데 떨어져 있는 동안 고마운 존재임을 알게 됐고 오래 헤어져 있으니 그리워지는 존재가 아내였다. 한쪽이 반쪽으로 나뉜 것은 그리워하라는 신의 사랑법이 아닐까 싶었다.


아내와 만나 반쪽의 그리움으로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아내를 무한히 사랑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됐다. 아내의 해외여행 때 들이닥친 코로나가 일깨워준 선물이었다.


[약력 : 고문수]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무


-자동차부품공업육성대책반 위원장


-산업자원부기술개발기획평가단 위원.









[스페셜 인터뷰]‘소통 전도사’ 안만호 “공감하고 소통하라”
[KJtimes=견재수 기자]“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워진 것이다.(공감과 소통의) 의미가 사라지고 충동만 남게 됐다.” 한국청소년퍼실리테이터협회(KFA: Korea Facilitators Association)를 이끌고 있는 안만호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진단했다. 또 이제 공감능력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비대면 사회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소통 전문가로 통하는 안 대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이나 SNS,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사회성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지식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며 “요즘 인간의 탈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에 비례해 인간성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사태는 사회적 거리를 두더라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이자 연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