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전 부인 최진실에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은 비운의 스타로 꼽힌다.
조성민은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박찬호, 임선동과 함께 최고의 투수였다. ‘황금 92 학번’의 주역으로 한국은 물론 해외야구의 관심까지 받았다.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하면서 계약금 1억5000만엔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황금기를 맞는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였다. 이후 그의 인생은 비운으로 치달았다.
1997년 7월 처음 1군 무대에 올라 주로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1998년 본격적으로 선발로 나서 재능을 만개하는 듯했다.
6월까지 7승으로 다승 공동 1위에 오르는 등 투수 각 부문에서 상위에 올랐고 완봉승 3번, 완투승 2번 등 홀로 팀 승리를 견인하며 요미우리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그해 조성민은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에 선발됐고,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갑작스러운 난조에 빠져들고 부상까지 겹쳐 더는 승수를 추가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 기나긴 부상과의 악전고투를 벌였으나 결국 재기하지 못하고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다.
그라운드 바깥의 인생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00년 톱스타인 고(故) 최진실씨와 결혼해 숱한 화제를 뿌렸으나 불화를 거듭하다가 2004년 파경을 맞았다. 그 과정에서 폭행 등 논란이 꼬리를 물었다.
이후 제빵 사업가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3년과 2004년에는 연달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해 국내 프로야구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조성민은 2005년 김인식 전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에 깜짝 입단했으나 전성기의 구위를 되찾지 못하고 글러브를 벗었다.
그 사이 전 부인 최진실씨가 자살을 하면서 비난에 시달리는 등 그의 인생은 더욱 내리막길로 가기도 했다.
이후 방송 해설가로 나서기도 한 조성민은 2011년 두산의 부름을 받고 2군 코치로 새 출발, 지난해 말까지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라나 지난해 10월 구단이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굴곡진 인생을 살며 세간에 늘 화제를 뿌렸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유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