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의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350여 명에 달한다. 이는 왜 중대재해법이 필요한지를 잘 대변해 준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광주시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이 인도 쪽으로 붕괴되면서 애꿎은 시민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이 중 사망자만 9명이다.
이번 사고는 2020년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최대 참사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더 이상의 후진국형 중대 재해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면 안된다는 국민적 공분이 들끓었지만 1년여 만에 또 다시 참혹한 비극이 재연되고 말았다.
학동 재개발 공사는 영세건설사도 아니고 대형건설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관리하는 사업장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학동 재개발 철거공사는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이 철거를 전문으로 하는 ‘한솔기업'과 하도급계약을 맺고 진행됐다. 그런데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불법 재하도급에 이어 과거 ’철거왕‘으로 불린 업자의 관련 업체가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철거업체 간 이면계약 의혹이 커지고 있다.
철거 업체 간 불법 거래 정황이 드러난 것인데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한솔기업을 하청사로 지정했고 또 한솔기업은 백솔건설에 재하청을 줬다. 석면 철거를 맡은 다원이앤씨도 백솔건설에 재하청을 줬다.
이는 사고 직후 원청인 현대산업개발 측이 재하도급이 없었다고 주장한 부분과 상충된다. 원청사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거나 한솔기업이 원청사 모르게 단독으로 불법 재하청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의심되고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원청업체도 철거사업을 관리할 의무가 명시돼 있는 만큼 현대산업개발은 이번 사고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붕괴사고는 예고된 인재였다는 게 곳곳에서 드러난다. 허가권과 관리책임을 지닌 광주 동구청이 허가한 해체계획서에는 철거 건물 안전도 검사와 철거 공사계획, 현장 안전계획, 해체·감리 현황 등이 나와 있지만 실제 철거 과정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계획서에는 철거공사 전 점검 사항으로 ‘접속도로 폭, 출입구 및 보도 위치’, ‘주변 보행자통행과 차량 이동 상태’를 확인하게 되어 있었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압쇄 공법으로 진행된 이번 철거 작업은 계획서상에 기재한 작업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현장 노동자들은 이번 사고의 문제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재하도급 관행’이다. 재하도급을 숨기려고 계약서를 안 쓰고 구두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재하도급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설현장 대부분이 그렇듯 서류는 완벽하다. 문제는 도급 단계를 거칠수록 공사비용이 내려간다. 건설사는 더 싸게 공사를 맡고 또 이윤을 남기려 한다. 이 때문에 비용 절감, 공기단축을 목표로 무리한 작업들이 진행되기 일쑤라고 현장 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다음으로 ‘관리감독의 부실’이다. 철거 공사를 공사계획서대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철거 현장에는 감리도 있고 안전 감독관도 있다. 관리감독의 총체적 부실은 결국 사고를 부른다. 현장 노동자들은 기본 절차나 공사 계획만 잘 지켰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얘기다.
이처럼 이번 참사가 발생한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어두운 관행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 붕괴의 전조가 있었는데도 작업중단이나 차량 통제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과 제기되는 하청업체들 간 유착 의혹 등이 경찰 조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 만큼 허가권과 관리책임을 지닌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행정과 안전 의무를 외면한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에게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현대산업개발이 사고 직후 재하청 의혹에 부인하면서 관계 당국의 조사에 혼선을 초래한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