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정소영 기자] 서울의 한 부부는 6년 넘게 라쿤 한 마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전용 공간을 꾸며주고, 고급 사료와 영양제를 챙겨주는 등 최선을 다해 ‘가족’처럼 돌보고 있지만, 야생의 본성을 지닌 동물과의 공존은 결코 녹록지 않다.
라쿤은 야생에서 하루 15km 이상을 활보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실내라는 제한된 공간은 이런 생태적 습성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부부는 집 안을 헤집고 다니며 벌어지는 각종 사고를 감수하고 있다. 알레르기 증상, 날카로운 손톱에 생긴 상처도 반복된다. 그럼에도 부부는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각오 없이,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야생동물을 입양했다가 결국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외래 야생동물의 유기 및 구조 건수는 80% 이상 증가했다. 대표적인 예로 붉은귀거북은 최근 5년간 100마리 이상이 유기된 채 발견돼, 생태계 교란 문제로 2001년 ‘유해 생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 백색 목록 시행 앞둔 정부, 동물복지 기준은?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자 정부는 올해 12월부터 ‘백색 목록 제도’를 본격 시행한다. 이는 사육 가능한 야생동물 목록을 사전에 고시해, 리스트에 없는 동물은 수입이나 개인 사육이 금지되도록 한 제도다. 생태계 파괴와 인수공통감염병 등의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작 동물복지 기준은 이 제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자유연대는 “목록에 포함된 동물이 실내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사람과의 공존이 가능한지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결정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 900종 넘는 허용…정말 '허용'해도 되나
환경부가 발표한 백색 목록에는 총 900종의 야생동물이 포함됐다. 이 중 포유류 9종, 조류 18종, 양서류 209종, 파충류 664종으로 파충류 비중이 70%를 넘는다. 그러나 업계 반발에 부딪히자 환경부는 오히려 목록 확대를 시사하며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려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에 따르면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사육 허용종은 대폭 줄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처럼 '허용' 기준이 애매한 상태에서는, 백색 목록이 오히려 정부가 ‘공인한 반려 야생동물 리스트’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생태적, 정서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환경에서 동물을 사육하게 되면 결국 동물도, 사람도 고통을 겪는다”며 “백색 목록은 사육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아야지, 단순히 유통 관리를 위한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