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품 유통사 '브이앤라이프(V&Life)'를 설립했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 장선윤 씨의 남편 양성욱 씨가 사업에서 손을 뗀다. 법원 법인 등기에 따르면 양 대표는 지난달 20일 브이앤라이프 이사직을 사임했고 대신 성신제(64) 씨가 이사로 취임했다. 성씨는 토종 피자 체인점 '성신제 피자'를 창업했던 인물이다. 브이앤라이프 측의 한 인사는 "최근 재벌의 사업이 논란이 됐고 롯데그룹과 관련이 없는데 반복해서 내용이 거론돼 불편함을 느꼈다"며 재벌가의 사업 확장이나 동반성장 등의 이슈가 사직의 배경이 됐음을 시사했다. 앞서 장씨가 대표로 재직 중인 외식업체 '블리스'는 동반성장을 위한 정부 정책과 소상공인 보호를 이유로 베이커리 사업을 정리하기로 한 바 있다. <kjtimes=김봄내 기자>…
국내 재계에서 단연 최고의 혼맥을 꼽으라하면 LG家일 것이다. 금성사로 출발한 구인회 창업주는 하근씨와의 사이에서 6남4녀라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어서다. 또한 LG그룹의 공동 창업주인 지금의 GS일가와도 사실은 혼맥에서부터 시작됐다. 구 회장은 허만식씨의 딸 을수씨와 결혼했다. 허만식씨는 당시 구 회장이 살던 지역 천석꾼으로 그의 6촌이 바로 허만정 LG공동 창업주이다. 구 회장의 장녀인 구자숙씨는 박진동씨와 혼인을 맺었다. 진동씨는 남해 군수를 지낸 바 있는 박해주씨이다. 장남인 구자경 전 LG그룹 회장은 하정임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정임씨는 경남 진주 대곡면의 대지주의 자손이다. 이들 나이에서 출생한 본무씨가 현재 LG그룹을 이끌고 있다. 둘째 아들인 구자승씨는 홍재선 전 쌍용양회 회장의 딸인 승해씨와 결혼했다. 홍 전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도 역임한 재계 거물이다. 셋째아들인 구자학은 현재 아워홈 회장을 지내고 있다. 자학씨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딸이다. 국내 재벌 순위 1, 2위를 다투는 집안이 사돈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LG유통 부회장과 상임고문을 지낸 넷째 아들 자두씨의 장인은 이흥배씨다. 자
한국과 일본 양국에 수십개의 기업군을 거느린 롯데왕국의 창립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1922년 경남 울주군에서 10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0년 울산농고를 졸업한 신 총괄회장은 1941년 일본 시모노세키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단돈 83엔이 전부였던 가난한 문학청년이었지만 성공의 꿈은 가슴 가득 품었던 그였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생계를 위해 우유배달에서 막노동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었다. 주경야독 끝에 신 총괄회장은 와세다고등공업 응용학과를 졸업했다. 1945년엔 사업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노동일로 모은 밑천으로 도쿄의 한 창고에 기름, 비누공장을 설립한 것. 그리고 1948년 지금의 롯데를 있게 한 공장을 세운다. 공장에서 만든 것은 껌이었다. 당시 일본엔 미군의 영향으로 껌이 대유행을 했고 자본금 10만엔, 종업원 10명으로 껌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 회사 이름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 ‘샤롯데(샤를로테)’에서 따와 ‘롯데(LOTTE)’로 정했다. 이 회사가 롯데왕국을 이루는 초석이 된 것이다. 일본 롯데는 껌, 초콜릿…
국내 대표 물류그룹인 한진그룹의 창업주는 조중훈 회장이다. 조 회장의 혼맥은 정재계에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하학원 이사장, 한진그룹 회장, 대한항공 회장은 지낸 고 조중훈 전 회장은 김정일 여사와의 사이에서 4남 1녀를 두고 있다. 먼저 장녀인 현숙씨는 이태희 변호사와 혼인을 맺었다.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지낸 이 변호사는 이후 법무법인 광장의 대표변호사를 지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항공의 법률 고문을 맡기도 했다. 이 변호사의 부친은 이상묵씨로 과거 홍아타이어의 감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이끌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이명희씨와 결혼했다. 조 회장의 장인 이재철 전 교통부 장관이다. 이 장관은 이후 인하대 총장과 국민대, 중앙대 총장을 지낸 바 있다. 삼남인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배우자는 현재 한진해운을 이끌고 있는 최은영 회장이다. 최 회장의 부친은 엔케이그룹을 이끌었던 최현열 회장이다. 아울러 이 관계는 롯데그룹까지 이어져있다. 조 전 회장의 장모이자 최 회장의 모친 신정숙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이기 때문이다.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은 구명진씨와 혼인했다. 구씨는 LG家 출신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것은 ‘해봤어 정신’이다. 이는 사업 추진을 계획 시 실무자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을 때 정 명예회장이 늘 반문했던 “이봐, 해보긴 해봤어?”라는 말에서 유래된 정신이다. 도전과 창조, 추진력으로 기업을 일군 정 명예회장의 ‘해봤어 정신’을 보여주는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중 하나는 서산간척지 개발이다. 그는 1980년 초 서산 앞바다의 간척지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20만톤 이상의 돌이 있어야만 물을 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 사업 자체에 회의를 나타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도전해보기 전에는 불가능함이란 없었던 정 명예회장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밀물과 썰물의 물살을 막기 위해 폐유조선을 침하시켜 물줄기를 감소시킨 다음 일시에 토사를 대량 투하해 제방과 제방 사이를 막는다는 이른바 ‘정주영 공법’을 내놓은 것. 이 공법으로 현대건설은 계획 공기 45개월을 35개월이나 단축해 9개월 만에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무려 280억원의 공사비도 줄였다. 재기의 발판을
동부그룹의 창업자이자 그룹의 중심인 김준기 회장은 정치권과 재계 등에 다양한 혼맥을 맺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본인의 가문에서는 고위직을 지낸 정치권 인사를 보유(?)한 한편, 사돈은 재계와 손을 잡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먼저 김 회장의 조부인 김향경씨는 강원도 동해 지역에서 손꼽히는 대지주였다. 그의 부친인 김진만씨는 전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동생인 김택기씨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김 전 의원의 배우자는 이양희씨다. 이씨는 현재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이다. 이를 통해 김준기 회장은 아버지 뿐만 아니라 사돈관계에서도 정치권 거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회장은 또 재계 유명인사와도 혼맥을 맺고 있다. 그의 배우지안 김정희씨는 김상준 전 삼양사 고문의 딸이다. 김 고문은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의 장남이며 김 창업주의 형은 김성수 전 동아일보 사장이다. 김 회장의 장녀 주원씨는 해동화재 부회장과 리젠트화재 회장을 지낸 김효일 가문에 시집을 간 것으로 나타났다. 장남이자 차기 동부그룹 수장으로 유력한 남호씨는…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 김종희 전 회장은 재벌 가운데 정치권과 많은 혼인의 인연을 맺을 것으로 유명하다. 부인 강태영씨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사돈지간이 모두 정치권과 연결되어 있어서다. 먼저 큰딸인 영혜씨의 남편은 전 제일화재 회장을 지낸 이동훈씨다. 동훈씨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아들이다. 이로 인해 한화그룹은 SK그룹과 한다리 걸친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최종건 전 SK그룹 회장의 막내딸 예정씨가 바로 이 전 부장의 막내며느리기 때문이다. 29세에 한화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그룹을 국내 재계 순위 5위까지 일궈낸 현재의 김승연 회장도 정치권과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1982년 서영민씨와 혼인을 맺었는데 영민씨는 서정화 전 국회의원의 큰딸이다. 아울러 빙그레그룹을 이끌다 지금은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차남 호연씨도 정치권 집안의 사위이다. 호연씨는 김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김미씨는 김신 전 교통부 장관의 딸이다. 아울러 김 전 장관의 독립운동가인 김구의 아들로도 유명하다. 한편, 김종희 회장의 형제들도 정치권에서 유명세를 알렸던 인물들이 있다. 큰형인 김종철씨는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역임하고 국민당…
불도저같은 저돌성으로 현대기업을 일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지금도 한국경제 발전의 영원한 전설로 불린다. 불과 30여년 만에 정상의 기업인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인 정 명예회장. 그는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이미지와 얼굴을 가지고 있어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 명예회장의 긍정적 평가는 적당한 때를 아는 남다른 통찰력과 추진력, 근검절약의 생활철학 등에서 비롯된다. 그는 ‘돈 많은 노동자’이며 특유의 저돌성으로 독특한 ‘정주영스타일’을 창조한 기업인이며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현대인, 현대정신을 창조한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반면 정 명예회장은 ‘정치세력과 결탁해 각종 특혜를 독식한 인물’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 또 과거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장기 출혈성 노사분규는 그를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인물’로 비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 명예회장은 변치 않는 신화의 주역이다. 그는 300mm에 달하는 발 사이즈만큼이나 큰 족적을 남긴 ‘거인’이고 한국 경제의 ‘영원한 보스’이다. 정 명예회장의 창업신화는 그의 부친에 대한 줄기찬 반역으로 시작됐다.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1910~1987년)은 천부적인 투시력과 재능을 가진 ‘천상 사업가’였다. 특히 이 창업주는 정보수집과 분석의 대가로 유명하다. 이 창업주의 정보수집 능력은 1938년 삼성상회를 열 때부터 빛을 발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완벽한 정보 수집을 우선 과제로 삼았던 이 회장은 삼성상회를 열기로 결정한 뒤 업종선택을 위해 국내외를 돌며 정보수집을 했다. 이에 걸린 시간만 2개월. 당시 이 창업주는 국내는 물론 중국 베이징, 상하이를 여행하면서 업종선택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모았다. 고심한 끝에 이 창업주는 삼성상회를 건어물과 청과물을 취급하는 무역업으로 결정했고, 이것이 지금의 삼성을 있게 만든 시발점이 됐다. 삼성그룹의 제2 도약을 가능하게 한 반도체사업 역시 도쿄와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정보센터에서 구상된 결과물이었다. 이 창업주의 일화로 유명한 ‘도쿄구상’ 역시 정보수집을 제 1순위로 두는 경영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1959년 세모(歲暮) 차관협상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방문한 뒤 귀국길에 오른 이 창업주는 폭설로 인해 일본 도쿄에서 발이 묶였다. 할 수 없이 도쿄의 한 호텔에서 묵기로 한 이 창업주는 일본 텔레비
현재의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 선경그룹 창업주 일가의 혼맥은 정치권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최 회장은 장남인 윤원씨는 전 조달청 김이건 국장의 자녀인 채헌씨와 결혼했다. 최 회장은 또 당시 정권의 실세와도 혼맥으로 이어져 있다. 막내딸인 예정씨가 전 중앙정보부장인 이후락 부장의 아들 동욱씨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최종건 회장의 동생이자 SK그룹 수장을 맡았던 최종현 회장도 정치권과의 혼맥을 맺어 세간의 눈길이 쏠린 바 있다. 최 전 회장의 장남이자 현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소영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혼맥을 두고 SK그룹이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때 사돈이 됐으나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어려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고 최종현 창업주 생전 SK가 태평양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유․무형으로 사돈 덕을 본 것 아닌가 하는 주위의 시선을 받아왔고 당시 최 창업주는 부인했으나 그룹 이미지에는 타격을 줬다. 또한 노 전 대통령 정권 시절 SK그룹은 이동통신 사업허가를 따낸바 있는데 이것이 현재의 SK텔레콤의…
삼성그룹의 창업주는 고 이병철 회장(1910~1987년)이다. 그의 업적은 눈부실 정도인데 청과물 판매상에서 오늘의 세계적 삼성그룹을 키웠다. 재계에선 이 창업주를 가리켜 천부적인 투시력과 재능을 가진 사업가였다고 평가한다. 163cm의 단신이지만 거인(巨人)으로 통했던 그만의 강점은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우선 이 창업주는 누구보다도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더불어 정보수집과 분석에 대가였고 용병의 달인이었다. 자신의 뜻을 반드시 실현시키고 마는 근성이 그에게는 있었다. 이 창업주가 대구 견동에서 삼성상회를 연 것은 1938년의 일이다. 당시 삼성그룹의 발판을 일굴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그만의 강점인 ‘정보수집’이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그는 삼성상회에서 건어물과 청과물을 취급하는 무역업을 하기로 결정할 때 시작 전 적합한 업종을 2개월 간 고심했다고 한다. 이 때 국내와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을 여행하면서 그 해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보수집과 관련된 일화는 또 있다. 반도체 사업 전 일본 도쿄와 미국 실리콘밸리에 정보센터를 설립했다고 한다. 관련 서적을 섭렵한 것은 물론 이곳 센터들을 통해…
호남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금호그룹은 재계를 거미줄 망으로 엮고 있다. 금호그룹이 맺고 있는 재벌가문은 삼성․LG가문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가문이 재계의 혼맥을 잇고 있어 금호가문도 역시 두 다리 건너 사돈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있다. 세간에선 금호가문의 혼맥에 대해 고 박인천 창업주가 ‘내노라’하는 장안의 명문가를 두루 뛰어다니며 사돈잡기에 나선 성과로 평가하기도 한다. 금호가문과 삼성가문간의 혼연관계는 간접적이다. 박 창업주의 3녀인 현주씨가 호남 기업인 대상그룹으로 출가했다. 그런데 삼성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장모인 박현주 여사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딸이다. 따라서 금호가문은 삼성가문과 간접 사돈이 된다. 반면 LG가문과는 직접적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인 성용씨(금호 명예회장)의 며느리가 구자훈 LG화학 회장의 막내딸인 문정씨다. 2000년 10월 이뤄진 이 결혼은 금호가문이 재계 전체와 다리 건너 사돈관계를 맺는 수확을 가져 왔다. LG가문의 혼줄의 거의 대부분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KJtimes=임영규 기자>
현대그룹 정주영 가문의 혼맥은 화려함에서 전혀 손색이 없다. 삼성․LG․강원산업․쌍용 등의 가문과 연결돼 있는 탓이다. 현대가문은 삼성가문과는 직접적 관계는 없다. 그러나 한 다리만 건너뛰면 사돈지간으로 연결된다. 이들 가문 간을 연결해 주는 매개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큰딸인 숙영씨가 노 전 총리의 큰며느리다. 노 전 총리는 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인인 홍진기 전 내무장관과 사돈 간이다. 이로 인해 현대가문과 삼성가문은 직접적 성혼은 없었지만 한 다리 건너 사돈지간으로 얽혀 있다. LG가문과 혼연관계를 형성한 것은 지난 1997년의 일이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 몽우씨의 장남 일선씨가 구자엽 LG건설 대표의 장녀인 은희씨와 혼인했다. 당시 두 사람은 미국 유학시절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고 밝혔고 이 결혼은 현대가문이 재벌간 혼맥지도를 한층 넓혀 나가는데 큰 일조를 했다. 현대가문은 또 1995년 강원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남 의선씨와 정도원 강원산업 회장의 장녀 지선씨가 화촉을 밝힌 것이다. 이는 재계에 재벌3세간 성혼이 줄을 잇게 불을 지핀 계기가 됐다. 쌍용가문
삼성가문의 혼맥 특징은 직접적 관계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맥도를 따라가다 보면 여타 그룹 일가와 비슷하고 복잡하다. 특히 조선․동아․동아일보와 혼연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삼성그룹이 재벌가문과 직접적인 혼맥을 이룬 것은 지난 1957년 LG가문과의 성혼이 처음이다. 고 이병철 그룹회장의 차녀 숙희씨가 고 구인회 LG 창업주 집안(자학씨와 결혼)의 며느리로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사위인 자학씨가 한진가문과 사돈이 되면서 삼성가문과 한진가무간도 두 다리 건너 사돈관계가 형성됐다. 삼성가문은 이후로 40여 년 가까이 재벌가문과의 이렇다 할 통혼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흐름이 깨진 것은 지난 1998년 ‘삼성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재용씨(삼성전자 상무)와 대상(구 미원)가문과의 혼사였다. 재용씨는 1998년 6월,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세령씨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당시 세간의 화두로 부각되기도 했다. 삼성그룹의 실질적 후계자인 재용씨와 아버지(임 명예회장)로부터 막대한 지분을 물려받은 세령씨와 결합이 그 이유다. 세간에선 국내 최고 ‘갑부 부부탄생’이란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재용씨와…
재벌가문의 혼맥은 얽히고 설켜 사돈의 8촌까지 따지면 연결이 될 정도로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이런 관계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일정 정도 가문의 노력(?)이 없었다고 부인하기는 설득력이 약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내를 대표하는 재벌가문의 규칙은 어떠할까. 물론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기보단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삼성가문은 자유연애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99년 세간에 화제를 뿌렸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부진씨(신라호텔 상무보)와 단국대 충신의 평범한 샐러리맨 임우재씨의 결혼이다. 또 있다. 이혼을 했지만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탤런트 고현정씨의 혼인이 그것이다. 현대가문 역시 자유연애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 자유연애 신봉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이혼은 절대사절’이란 것이다. 때문에 결혼을 승낙할 때 “평생 이혼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다짐을 받는다고. 현대가문은 사위를 고를 때 배경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장래성이 승낙의 잣대가 된다. 얼마나 유능한 청년인가가 평가기준인 셈이다. 반면 LG가문은 보수적인 기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