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김봄내 기자]고 정주영 창업주의 진면목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이미지와 얼굴을 보여줬던 탓이다. 불도저같은 저돌성으로 독특한 경영인의 모습을 보여줬는가 하면 수많은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 창업주를 얘기하는데 있어 ‘반역’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는 없다. ‘현대’의 탄생에서부터가 부친에 대한 끝없는 반역으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정 창업주는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6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이곳에서 서당공부와 신문대학을 통해 전문가 버금가는 한문 실력은 물론 폭넓은 식견을 갖췄다. 그러던 그가 반역을 시작한 것은 15살 되던 해부터였다. 이 때부터 3년간 4번의 가출을 시도했다. 그의 부친은 그를 훌륭한 농군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그의 행보는 줄기찬 반역이었던 셈이다. 4번째 가출(당시 19살)에서 성공을 거둔 정 창업주는 인천에서부터 부두노동자와 농사품앗이, 건축공사장 인부, 공장견습공 등을 하면서 서울진출을 시도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1938년에 경일상회를 설립한 다음 194
[KJtimes=김봄내 기자]한화솔라원의 새사령탑에 남성우 전 삼성전자 IT솔루션 사업부장이 선임됐다. 그는 이번 인사로 한화솔라원의 신임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됐다. 남 신임사장은 중앙고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서 경영혁신팀장, DMC부문 컴퓨터사업부장, IT솔루션 사업부장 등을 역임했다. 남 사장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갖춘 고품질의 태양광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한화솔라원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경영실적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화솔라원은 남 사장의 이번 영입은 지난달 15일 홍기준 부회장이 한화솔라원 최고경영자(CEO)직을 사임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 사장의 글로벌 시장 개척, 경영혁신 등의 경험이 한화솔라원을 글로벌 태양광 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KJtimes=김봄내 기자]한국경제 발전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일가에선 파란만장한 가족사도 빼놓을 수 없다. 재계 일각에선 현대가 잇따른 ‘비운’과 경영난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지난 1938년 경일상회라는 쌀가게로 출발, 국내 최대 대기업 집단인 현대그룹을 창업하는 신화를 만들었던 정 창업주는 6명의 형제와 슬하에 8남1녀의 자녀, 30명에 달하는 손자손녀를 둔 다복한 대가족의 가장이기도 했지만 형제와 자식들을 먼저 앞세운 불운을 맞았다. 정 창업주의 아들 가운데 사고로 숨지거나 자살한 사람은 4명에 이른다. 여기에다 동생까지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또 첫째 며느리 역시 지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정 창업주는 이들 중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을 제외한 4명을 2001년 3월 타계하기 이전에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정주영 패밀리’의 불운은 지난 1962년 4월14일 정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 기자의 교통사고로부터 시작됐다. 정신영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중,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장 폐색증으로
[KJtimes=김봄내 기자]한국 기업의 발전과 관련된 숱한 신화의 주역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한국 경제의 ‘영원한 보스’였던 그는 자기 발(운동화 300mm)만큼이나 큰 족적을 남긴 거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특별한 인연이 된 인물들은 누구일까. 우선 정 창업주의 여동생 남편인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 전 명예회장(2010년 8월 11일 별세)을 꼽을 수 있다. 김 명예회장은 정 창업주의 창업 동기다. 현대그룹의 또 다른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들의 인연은 194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 창업주는 홀동광산에서 운수업을 하고 있었고 김 명예회장은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둘이 만나 뜻을 같이했고 한가족(매제)까지 됐다. 그는 ‘기계박사’로 통했는데 중공업 분야에서 우뚝 선 오늘의 현대그룹을 일군 인물이다. 뿐만 아니다. 정 창업주의 성공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남자 형제들이다.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2006년 7월 20일 별세)과 둘째 동생 고 정순영 현대시멘트 전 고문(2005년 10월 13일 별세), 셋째 동생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전 명예회장(2005년 5월…
[KJtimes=김봄내 기자]현대가문 혼사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단연 ‘연애결혼’이다. 고 변중석 여사와의 사이에 8남1녀를 둔 고 정주영 창업주는 모두를 자유결혼을 시켜 거의 대부분 평범한 인물들과 사돈을 맺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권문세가와 혼사를 맺을 수 있었지만 정략결혼보다는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사실 정 창업주는 보기 드문 연애결혼 찬미자다. 그 역시 집안결정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평범한 농가 출신인 변 여사를 아내로 맞았다. 정 창업주는 평소 ‘결혼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에 물질과 정략이 개입되어선 안된다. 결혼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어야 한다’는 결혼관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은 모두 연애결혼으로 가정을 꾸렸다. 정 창업주는 국내 재벌기업들의 창업사에서 발견하기 힘든 가정과 가족의 복을 누린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농군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서산 간척지에 대규모 농지를 갖고 있던 그는 한국 최대의 타고난 농사꾼으로 통했다. 정 창업주는 농사꾼의 철학으로 ‘자식농사’를 잘 지은 사람이다. 그의 장남은 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이다. 정 전 사장은 평범한 부모 이현구씨와 민예기씨의 장녀인 고 이영자
[KJtimes=김봄내 기자]삼성가문에는 비운의 주인공이 두 명 있다. 모두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그 첫 번째는 고 이병철 창업주의 둘째 아들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다. 1933년 5월 24일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그는 1991년 7월 19일 불치의 병으로 생을 달리했다. 이 창업주가 1987년 11월 19일 타계했으니 불과 4년 만에 부친을 따라간 셈이다. 이 전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그는 유학시절 만난 나카네 히로미(개명 후 이영자) 여사와 1963년 결혼했다. 그리고는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이 여사는 일본 아이치현 출신으로 일본 미츠이물산에서 중역으로 일했던 나카네 쇼지의 딸이다. 일본 이름을 버리고 ‘이영자’란 이름으로 개명한 것은 결혼 23년 만인 1986년의 일이다. 이 전 회장은 한 때 이 창업주에게 ‘촉망받는 아들’로 사랑을 받았으나 이른바 ‘한비사건’으로 인해 삼성그룹을 떠났다. 이후 1967년 5월 미국 마그네틱미디어와 제휴해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977년 인수한 특수세라믹사를 통합해 새한미디어를 설립, 독자운영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실제 새한미디어는 1990년대 당시
[KJtimes=김봄내 기자]청과물 판매상에서 오늘의 세계적 삼성그룹을 키운 고 이병철 창업주. ‘신뢰’를 경영철학으로 삼았던 그는 천부적인 투시력과 재능을 가진 사업가이자 우수한 정보수집가였다. 게다가 자신의 뜻을 반드시 실현시키고 마는 용병의 달인이기도 했다. 이 같은 요소들이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기업을 일으키고 가장 많은 부를 쌓았음에도 그의 사업과 인생행로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군 사업체를 타의에 의해 가장 많이 빼앗긴(?) 인물 중 한 명이다.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반면 때로는 정변으로 인한 극심한 사회변동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 창업주가 사업을 하면서 첫 번째 아픔을 겪은 것은 6•25 때였다. 해방 후 서울에서 번창했던 사업들이 전쟁으로 인해 헛되이 수고한 일이 되어 버렸다. 당시 삼성물산공사 사장이었던 그는 악덕 부르주아(자본가 계급)로 내몰려 취조를 받은 것은 물론 창고에 있던 물자들을 압수당했으며 회사를 빼앗긴 채 간신히 가족들과 목숨을 건졌다. 그런가 하면 4•19이후에는 세간의 지탄을 한 몸에 받았다. 부정축재 1호로 내몰린 탓이다. 한국흥업은행과 조흥은행을 소유
[KJtimes=김봄내 기자]고 이병철 창업주의 특별한 인연을 꼽는다면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다. 이들의 관계는 이 창업주가 지난 1986년 홍 전 회장 별세하자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온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 나의 사돈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각별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인이기도 한 그가 이 창업주와 교분을 쌓기 시작한 것은 4•19 후 3•15 선거와 관련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였다. 이들의 인연을 연결시켜 준 인물은 신현확 전 국무총리였다. 신 전 국무총리는 당시 홍 전 회장의 능력을 높이 샀고 이 창업주에게 천거했다. 이를 받아들인 이 창업주는 홍 전 회장에게 면회를 갔다. 이후 그의 집에 찾아가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출감한 그는 삼성에 몸을 담았다. 이후 1965년 삼성이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을 개국하자 홍 전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이 같은 인연은 사돈관계로까지 발전했다. 홍 전 회장은 이 창업주와 의기투합해 사돈을 맺기로 했다. 그리고는 딸인 홍라희 리움 관장을 자연스럽게 이 창업주에게 인사시켰다. 1965년 당시…
[KJtimes=김봄내 기자]삼성가문하면 바로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고 이병철 창업주(호 호암)다. 이 창업주는 한국 기업사에서 기업과 가문을 어떻게 일궈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삼성가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정략결혼’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한 혼사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재계에선 이 창업주에 대해 권력을 이용하되 권력과 결코 가까워지지 않으려한 그의 철학이 혼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그의 자녀들 혼사에 기인한다. 슬하에 4남6녀를 뒀던 이 창업주는 자녀들을 대게 고향이 같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집안 또는 관직에 있더라도 별스럽지 않은 집안과 연을 맺었다. 물론 일각에선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와 고 홍진기 전 법무장관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곤 한다. 하지만 구 창업주와의 혼사는 재벌간 통혼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또 홍 전 장과의 인연은 사돈을 맺을 당시 관직을 떠난 지 오래된 상태라 정략결혼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 창업주가 가정을 꾸린 것은 1926년의 일이다. 당시 16살이었던 그는 부친인 고 이찬
[kjtimes=정소영 기자] 이숙연 종로구의원이 6,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종로구청장 후보로 선정됐다. 이 의원은 최고위 의결을 거쳐 최종 후보로 확정될 예정이다. 지난 7일 새누리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열고 여성우선공천 지역인 서울 종로구 기초단체장 후보로 이 의원을 선정했다. 이 의원은 “장구한 조선 600년의 정치·경제·문화 일번지 종로는 오간데 없고 비전 없고, 무기력에 빠진 종로구의 옛 영광을 재건하고자 출사표를 던졌다”며 “17만 종로구민과 엄중한 약속을 무겁게 인식하고 부끄럽지 않은 구청장이 되겠다”고 출마 배경을 밝혔다. 특히 “종로구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구의 발전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종로구의 일꾼으로서 평소 꼼꼼하게 준비해왔던 공약을 엄선하고 또 엄선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번 선거를 통해 ▲관내 전통시장 활성화 ▲종로귀금속상가-재래시장-청계천-창덕궁 연계 관광단지 육성 ▲낙산공원 성곽길 걷기 편한 거리로 조성 ▲숭인지역 봉제 산업 육성 ▲관철동 일대 문화의 거리 조성 ▲국내외 관광객 유치 위한 북촌한옥마을 중장기 프로젝트 ▲종로구 고용·복지센터 건립 등을 실현해 내겠다고 밝혔다. 종로구의 14
[KJtimes=김봄내 기자]우오현 대한해운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M&A)시장의 ‘큰 손’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전남 고흥출신으로 소농(小農)의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난 우 회장은 중견그룹 삼라마이다스(SM)그룹을 설립해 잘 알려진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10년 만에 지역 중소건설업체가 계열사 20곳을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광주상업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지역 명문대인 전남대를 붙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과거가 있다. 하지만 24세에 맨몸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어 1988년 36세에 삼라건설을 세웠다. 삼라마이다스그룹은 지난 1988년 설립한 삼라건설(삼라마이더스)과 우방 등 건설업을 기반으로 최근까지 M&A를 통해 급성장했다. 삼라건설에 여유자금을 확보하고 실전 M&A를 공부한 후 파산한 회사를 인수해 알짜 기업으로 만들어 되파는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을 성장시켰다. 실제 진덕산업(2004년), 벡셀(2005년), TK케미칼•남선알미늄•경남모직(2006년), 우방•신창건설(2008년) 등 법정관리나 워크 아웃업체를 잇달아 인수해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법정관리…
[KJtimes=김봄내 기자]10대 재벌그룹 최고경영자(CEO) 3명 중 1명 이상이 이공계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영학이나 경제학 전공자를 합하면 이공계 출신 비율과 비슷했다. 10대재벌 CEO들의 평균 나이는 58세다. 7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10대 재벌 상장사 91곳의 대표이사 125명(공동대표·각자 대표 포함) 중 대학 전공 기준으로 이공계 출신은 43명으로 전체의 34.4%에 달했다. 최치준 삼성전기 대표,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대표, 박영기 LG화학 대표는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이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대표는 연세대 기계공학과, 박재홍 한화 대표는 한양대 기계공학과, 마용득 현대정보기술 대표는 홍익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또 이형근 기아차 대표, 최원길 현대미포조선 대표, 이상철 LG유플러스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동문이다. 경영·경제 전공자도 이공계 출신과 비슷한 규모로 많았다. 경영 전공자가 33명, 경제 전공자가 10명이다. 이공계와 경영·경영학과 출신을 합하면 전체의 68.8%에 달했다. 대학별로는 서울대가 48명으로 38.4%를 차지했고 고려대 16명, 연세대 11명, 한양대 9명, 한국외대 6명, 성
[KJtimes=김한규 기자] 금융사 수장의 퇴직금 산정기준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4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종원 전 코리안리 대표가 퇴직금으로만 159억5700만원을 챙겼다.박 전 사장의 경우보험업계에서 최장기간인 15년간 대표직을 유지했기 때문에 퇴직금이 많이 쌓인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일각에서는 박 전 사장에게 평균 연 10억원에 이르는 퇴직금을 쌓아주는 것은 일반직원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실제로 코리안리는 퇴직금을 일반직원에게 매년 월 통상임금의 1.2배를 상무는 2배, 전무는 3배, 사장은 4배의 누진율을 적용받았다.이런 거액의 퇴직금을 수령한 최고경영자가 박 전 사장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LIG손해보험의 구자준 전 회장도 11년간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42억2000만원의 퇴직금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LIG손보의 경우 퇴직금 누진율을 일반직원에 대해 1을 적용했지만 사장은 4, 부회장은 4.5, 회장은 5를 적용해 코리안리 보다 더욱 불평등 한 것으로 나타났다.또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퇴직금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별 퇴직금으로 35억원을 받았으며,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의 경우 퇴직금을
[KJtimes=김봄내 기자]재벌가 한 자제의 '재테크 대박 스토리'가 화제다. 주인공은 LS그룹 장손인 구자웅(36) 포메이션8 대표. 구 대표의 부친은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이며 그의 조부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다. 구자홍 회장의 외아들인 구 대표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군 복무를 마치고 지난 2002년 미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학업을 위해서다. 그는 그곳에서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MBA)을 다녔다. 그리고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에서 경험을 쌓았다. 구 대표가 대박을 터트리게 된 것은 지난 2012년부터 창업해 운영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인 ‘포메이션8’ 덕분이다. ‘포메이션8’은 지난해 가상현실(VR) 기기업체 ‘오큘러스VR’에 125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런데 최근 이 업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에 인수되면서 거액을 벌게 됐다. 실제 페이스북은 얼마 전 ‘오큘러스VR’을 현금과 주식, 조건부 분할지급분을 포함해 23억 달러(2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포메이션8’은 페이스북의 이번 인수·합병(M&A)으로 약 10배에 달하는 1억3000만 달러의 현금과 페이스
[KJtimes=유병철 기자] 여성전용 아웃도어 와일드로즈의 스위스본사가 패션그룹형지의 와일드로즈 아시아 진출을 적극 후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와일드로즈 스위스본사의 레토 퍼러 CEO가 패션그룹형지 역삼동 본사를 방문했다. 패션그룹형지가 와일드로즈의 아시아 판권을 인수한 것을 기념하고 향후 전개하는 국내외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이날 김명호 패션그룹형지 사장 및 유지호 와일드로즈 사업본부장은 레토 퍼러 CEO와 국내 와일드로즈 전개현황을 공유하고 아시아 진출에 대한 의지를 공유했다. 또한 바우하우스 쇼핑몰에 입점한 와일드로즈 매장과 청계산 매장을 방문해 올 봄 아이템 현황과 매장 환경을 둘러보았다. 패션그룹형지는 지난 1월 와일드로즈의 아시아 판권을 인수한 후 국내뿐 아니라 대만, 중국, 홍콩 등 아시아 주요 국가 진출을 준비 중이다. 레토 퍼러 CEO는 “패션그룹형지의 브랜드 전개 노하우를 기반으로 와일드로즈가 아시아로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스위스본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편 레토 퍼러 사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한 디자인센터와 와일드로즈 한국 디자인팀과의 협업을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이 디자인센터는 와일드로즈 스